◇플라스티키, 바다를 구해줘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 지음/우진하 옮김/288쪽·1만8000원/북로드
세계 최고 부자 가문으로 꼽히는 로스차일드가(家).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음모론도 끊이지 않았다. 세계 금융을 장악한 유대계 로스차일드 가문이 각국 정상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며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음모론이 틀렸나 보다. 이 가문의 막내아들이 해양 오염 문제에 눈을 떴지만 정작 각국 정상을 조종할 힘이 없는지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 달라고 호소하며 페트병으로 만든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니. 부잣집 막내아들의 ‘철부지 모험’으로 보기엔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193cm의 훤칠한 키, 잘생긴 얼굴의 저자(아래사진)는 유명한 환경 모험가다. 그는 2005년 환경탐험단체 ‘어드벤처 에콜로지’를 조직하고 다음 해 러시아를 출발해 캐나다를 목표로 100일간 북극을 횡단했다. 탐험은 급속도로 녹아내리는 빙하 앞에서 중단됐지만 그는 영감을 얻었다. 전 세계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자신의 북극 횡단을 응원하는 모습을 본 것. 단순히 사람들에게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을 넘어 지구의 연약함에 공감하도록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그가 만든 방정식은 이렇다. ‘꿈은 모험을 위한 기반이며, 모험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야기는 더 많은 꿈의 씨앗을 뿌리는 영감의 뿌리인 것이다.’
어디로 탐험할까 고민하던 저자의 눈에 유엔환경계획의 ‘심해와 공해의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 보고서가 들어왔다. 바다 위 km²당 떠다니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1만7800개에 달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해양오염 실태를 고발하기로 결심했다.
사람의 이목을 끄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저자는 페트병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무모한 도전’을 결심했다. 별난 사람, 별난 모험에 익숙한 현대인도 페트병을 타고 바다를 건넌다는 말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디자이너와 선박 설계사의 도움으로 페트병 1만2500개를 부력으로 삼는 쌍동선을 만들었다. 단단한 껍질 속에서 구획을 나눠 탄력을 유지하는 석류 열매 모양에서 영감을 얻었다. 모험의 목적을 알리려고 페트병을 밖으로 보이게 디자인하다 보니 속도가 느려 나중에 크게 고생했다. 얇은 플라스틱을 샌드위치처럼 겹쳐 만든 신소재 세레텍스로 선루를 완성했고 나무 열매와 설탕으로 만든 접착제로 플라스틱을 이어 붙였다.
배 이름은 플라스티키(Plastiki)라고 붙였다. 노르웨이 탐험가 토르 헤위에르달이 1947년 중남미에서 자라는 발사나무로 만든 뗏목 콘티키(Kon-Tiki)호를 타고 페루를 출발해 태평양을 건너 폴리네시아 제도에 도착한 것에서 따 왔다.
든든한 동지들도 모였다. 해양 환경 보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여성 조 로일 선장, 전문 항해사 출신 데이비드 톰슨, 헤위에르달의 손자인 올라프 헤위에르달, 다큐멘터리 제작자 베른 몬과 맥스 조던, 인터넷 사이트 트리허거 창립자 그레이엄 힐, 사진작가 루카 바니니로 팀이 꾸려졌다.
2010년 3월 20일 플라스티키는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다. 이후 여정을 보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하고 있는데 당신네들은 플라스틱을 마구 쓸 거냐”고 꾸짖는 듯하다. 거대한 파도에 흠뻑 젖은 채 배(6m×18m)에 있으면 ‘세탁기 안에서 돌고 있는 양말짝 같은 기분’이 든단다. 뱃멀미와 탈수증에 시달리다가 차라리 바다로 뛰어들어 비극을 끝내고 싶을 때도 있었다. 높은 파도와 바람 속에 난파될 위험에 처하고, 플라스티키를 위협하며 지나가는 화물선의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다. 몬은 사랑하는 아내의 출산을 화상전화로 지켜봐야 했다.
저자를 진정 가슴 아프게 한 것은 ‘푸른 사막’으로 변한 바다다. 매년 플라스틱 오염으로 10만 마리의 해양 포유류와 100만 마리의 바닷새가 목숨을 잃는다. 콘티키 항해 때는 해양 생물들이 반겨 줬지만 60년이 지난 뒤 플라스티키 항해엔 플라스틱 쓰레기만이 눈에 들어왔다.
독자도 억만장자의 흥미진진한 모험 사진을 넘기다가 위장에 플라스틱을 가득 채운 채 굶주려 죽은 바닷새 사진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저자는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페트병도 위험하지만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 플라스틱’이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플라스틱이 풍화작용으로 작은 조각으로 변해 독성을 내뿜고 해양 생물의 호르몬 작용을 방해한다. 이미 바다는 눈에 보이는 플라스틱 쓰레기만 수거해서 해결될 수준보다 심각하다.
이 책은 호주 시드니 항에 예인선의 도움을 받아 2010년 7월 26일 입항하는 것으로 끝난다. 129일 동안 1만4800km를 평균 3.7노트(시속 6.8km)로 달려왔다. 해상 인터뷰만 50회, TV와 라디오에 200회, 언론 지면에 300회 이상 보도됐다. 플라스티키와 관련된 연관 검색어가 구글에만 80만 개가 떴다고 하니 사람의 이목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국내 언론의 보도 건수를 살펴보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책의 국내 출판이 의미가 있으려면 우리 안에서 실천이 있어야 한다. 플라스티키의 맹세를 따라해 보자. “나는 플라스틱 페트병 사용을 중단하고 개인용 물병을 갖고 다닐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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