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책 권하는 유치장… 그곳에서 마음의 눈을 뜨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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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경찰서 ‘작은 실험’ 성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유치장에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비치해 놓는 작은 실험으로 유치장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제공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유치장에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비치해 놓는 작은 실험으로 유치장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제공
‘책 권하는 유치장’이 있다고 해서 5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를 찾았다. 취재 목적으로 유치장 안에 들어가는 것은 규정상 금지돼 있어 경찰서 내 유치장 폐쇄회로(CC)TV로 안을 살펴봤다.

한 30대 남자 유치인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책 제목이 화면에 보이지 않아 경찰에게 물어봤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마음의 눈으로 세상 읽기’. 책을 읽으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고 한다.

유치인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열흘까지 유치장에 머문다.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압박, 뒤늦은 후회, 세상에 대한 분노로 평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보통 유치인들은 억지로 잠만 청하거나 멍하니 TV만 본단다.

올해 3월 영등포경찰서 수사과 유치관리계 직원들은 국내 경찰서로는 처음으로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직원들은 매달 중순 영등포구 공공도서관을 찾아가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30권을 빌려와 유치장에 비치한다. 유치인에게 읽고 싶은 책을 물어 빌려오기도 한다. 영등포구청도 경찰서와 협약을 맺고 기꺼이 책을 내줬다. 하해룡 유치관리계장은 “유치인의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고 잠재적 범죄성향을 억제할 방안을 고민하다 책을 택했다”고 밝혔다.

도서 비치 이후 유치장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4월 살인미수 혐의로 붙잡힌 40대 후반의 전과자는 “인생이 끝났다”며 이틀간 밥도 먹지 않고 우울해했다. 백성현 경위는 쉽게 읽을 수 있는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를 그에게 건넸다. 책을 읽기 시작한 다음 날 식사를 시작했다. 그는 “책 잘 봤다. 고맙다. 교도소에 가지만 똑바로 살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5월 특수절도를 저지른 10대 남학생은 유치장에서 심심하다고 떼를 썼다. 도은경 경장은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권했다. 독서와 담을 쌓았던 10대는 시큰둥하게 책을 받더니 나중엔 “책이 재밌다”며 메모까지 해가며 열심히 읽었다.

한 20대 유치인과 짧은 필담을 나눴다. ‘책을 읽으니 어떤가’ 물었더니 답은 이랬다. “안에서 책을 보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언제 나갈지 모르지만 여기서 많은 책을 보고 마음을 안정시켜 보겠다.”

책 한 권이 사람을 단박에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유치인들이 ‘유치장 독서’를 시작으로 책 읽는 재미에 빠진다면 나쁜 생각을 할 시간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영등포경찰서 유치관리계 직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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