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공간, 익숙한 공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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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두진 전’, 서양화 기법의 초현실 풍경… 구불구불한 땅과 숲, 유기체처럼 살아 꿈틀
‘박능생 전’, 한국화 기법의 ‘도시 산수’… 자연과 소통 못하고 고립된 문명의 섬 그려

회화와 설치작품을 넘나들며 새로운 실험에 도전해 온 안두진 씨의 대작 ‘아무 일도 없이’(130×480cm). 강렬한 형광색채와 구불거리는 짧은 붓질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화익갤러리 제공
회화와 설치작품을 넘나들며 새로운 실험에 도전해 온 안두진 씨의 대작 ‘아무 일도 없이’(130×480cm). 강렬한 형광색채와 구불거리는 짧은 붓질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화익갤러리 제공
세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비현실적 풍경이 캔버스에 펼쳐진다. 구불구불한 짧은 선으로 그려낸 땅과 숲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인 양 꿈틀대는 듯하다. 오렌지 빛으로 물든 하늘에 부채꼴 무지개가 둥실 떠 있고 그 밑에는 작은 성들이 숨어 있다. 왠지 불안하고 위태로운 풍경의 제목은 ‘아무 일도 없이’라고 적혀 있다.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가 마련한 안두진 씨(38)의 ‘오르트구름’전에 선보인 그림은 형광빛 색채와 이미지의 낯선 조합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미지의 최소 단위(이마쿼크)가 있다는 가정을 세운 작가는 “풍경을 그렸지만 실존하는 공간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마쿼크의 패턴화, 의미화를 지향한 발생적 회화”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5분 거리에 자리한 서울 소격동 갤러리 조선에서 열리는 박능생 씨(40)의 ‘도시를 탐하다’전은 부산과 뉴욕 등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한국화의 전통기법을 존중하면서 현대적 관점과 감각을 덧입힌 ‘도시 산수’를 선보였다.

이들은 각기 서양화와 한국화 분야에서 풍경을 화두로 삼아 독창적 시각언어를 구축하는 여정에 있다. 회화의 본질을 고민하면서 개념의 가벼운 유희 대신 오랜 시간의 노동 집약적 과정을 선택한 점이 돋보인다. 화가의 손맛이 살아 있는 섬세하고 치밀한 그림들이 매력적이다.

○ 낯선 곳으로의 초대

‘오르트구름’전에 선보인 크고 작은 그림의 밀도는 똑같이 충실하다. 형광빛 색채가 압도하는 캔버스에선 점, 선, 면을 만드는 작은 붓질이 뒤섞여 있다. 마치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색을 섞지 않고 1호짜리 붓으로 빈틈없이 채색한 그림들로, 그야말로 작가의 ‘엉덩이 힘’으로 얻은 끈기의 결실이다.

무거운 먹구름과 해일이 밀려오거나 거대한 폭발을 암시한 듯한 공간은 얼핏 낭만적으로 다가오지만 작가는 ‘풍경을 잃어버린 풍경’이라고 말한다. 과학적 사고체계를 기반으로 증식한 이미지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물질이 원소의 배열과 구조에서 탄생하는 원리를 작가는 이마쿼크와 회화의 관계로 차용한 방법론을 만든 셈이다.

빛나는 은하계를 배경으로 거대한 암석을 그린 ‘오렌지 스톤’, 왜곡된 신체와 풍경이 조우하는 ‘단단한 시’ 등과 수채화 드로잉이 눈길을 끈다. 21일∼9월 10일. 02-730-7818

○ 익숙한 곳으로의 초대

한국화가 박능생 씨의 ‘버티칼 점프’는 자연풍경과 이를 야금야금 파고들어간 도시의 일상 공간을 먼 거리에서 조망한 그림이다. 번지점프하는 사람의 모습이 ‘도시 산수’를 수직으로 가르면서 긴장감과 역동감을 더해준다. 갤러리 조선 제공
한국화가 박능생 씨의 ‘버티칼 점프’는 자연풍경과 이를 야금야금 파고들어간 도시의 일상 공간을 먼 거리에서 조망한 그림이다. 번지점프하는 사람의 모습이 ‘도시 산수’를 수직으로 가르면서 긴장감과 역동감을 더해준다. 갤러리 조선 제공
‘도시를 탐하다’전에선 실경에 기초한 도시정경을 만날 수 있다. 화가는 몸과 마음의 수행인 양 무수히 반복되는 붓질로 완성한 그림을 통해 동시대 공간을 전통 산수로 품은 ‘도시 산수’를 창조했다.

화선지에 그린 흑백 수묵화와 함께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작품이 선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근경 중경 원경을 파노라마로 펼쳐낸 화면에 아파트 숲, 거미줄 같은 도로, 자동차의 행렬이 정교하게 배치돼 있다. 다른 작품에선 하늘에서 도시를 향해 풍덩, 번지점프를 하는 인간의 모습이 정적인 산수에 역동적 활력을 불어넣는다.

초록 풍경을 회색 도시가 파고들어 자연과 문명세계가 소통하지 못한 채 섬처럼 유리된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들. 발품을 팔며 사생한 기록을 바탕으로 완성된 그의 회화가 삶의 현장과 사회의 변화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30일까지. 02-723-7133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안두진 전#박능생 전#도시 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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