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派獨 한인의 디아스포라 문학 50주년]파독 광원 3대 가족사 다룬 장편 ‘거의 맞음’ 낸 변소영
조국은 가난했다. 물려받은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뿐인 청년들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지구 반대편 독일로 날아갔고, 갱도의 열기와 먼지를 마시며 석탄을 캤다. 이들 파독(派獨) 광원의 일부는 귀국했지만 상당수는 독일에 남아 삶의 터전을 꾸렸다. 파독 50주년을 맞는 지금 이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재독 소설가 변소영(50)의 첫 장편소설 ‘거의 맞음’은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이화여대 독문과 재학 중 1984년 유학을 떠나 30년 동안 독일에서 살며 독일 한인의 디아스포라(이산) 문제에 천착해 온 작가를 국제전화로 인터뷰했다.
“독일 한인의 1세대 대부분이 파독 광원입니다. 낯선 땅에서 이들이 얼마나 굴곡진 인생을 살았고 또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설은 파독 광원이었던 기혼과 희돈 그리고 신심과 이들의 자녀·손자 세대에 이르는 3대에 걸친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민 2, 3세대의 삶을 조명하는 데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파독 광원의 자녀인 2세대가 대개 30대 중반∼40대 초반입니다. 3세대는 아직 학생이 많고요. 1세대에 비해 모국에서 관심도 적고 잘 알려지지 않은 2, 3세대의 방황과 갈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독자들은 소설 속 이들 이민 2, 3세대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독일 여성과 결혼한 기혼이 낳은 둘째 아들 얀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진 뒤 아버지와 담을 쌓고 지내고, 희돈의 딸 진이와 진이의 딸 선이는 모두 미혼모가 된다. “미혼모나 동성애라는 소재는 현재 한인 2, 3세대가 직면한 문제가 이민자 후손으로서의 특수한 문제라기보다 동시대 독일인들이 겪는 일반적인 현상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2, 3세대 내부의 분화상도 흥미롭다. 기혼의 맏아들 상현은 “환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라”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의대생이 됐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진짜 독일인’이 되려 하고, 외려 독일 이름을 가진 둘째 얀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감추고 살아간다. “1세대가 아무래도 둘째나 셋째보다 맏이에게 더 엄격하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자긍심도 더 강하게 요구하는데, 꼭 바람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런 현실을 반영한 겁니다.”
소설은 이런 갈등과 상처가 ‘시간의 붓질’로 아물 것이라는 긍정적 태도를 잃지 않는다. 독자의 연민을 자아내는 선이와 강미가 가장 강인한 삶을 꾸려가고 이들의 반려자가 독일인이라는 설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변 한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2, 3세대는 결국 독일에서, 독일인 사이에서 더 행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하지만 작가가 독일인으로의 완전한 동화(同化)만이 답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거의 맞음’이라는 제목엔 작가가 기대하는 재독 한인의 미래상이 담겼다. “한인들과 독일사회, 또 1세대 파독 광원들과 그 자손 사이의 관계 맺기에 정답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거의 맞음’은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 정도만 돼도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싶어요.”
변 작가는 독일 국적의 한국 입양아와 결혼해 두 자녀를 낳고 생활해 오다 2010년 실천문학 봄호에 단편 ‘더티 댄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2011년 첫 단편 소설집 ‘뮌헨의 가로등’을 통해 독일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갈등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유럽에서 사는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본격 탐구한 작가로 조명을 받았다.
그의 다음 작품은 뭘까. “광원 얘기를 썼으니, 파독 간호사도 한번 다뤄야 하지 않을까요? 독일에 남은 이들 중에는 광원보다 간호사가 훨씬 많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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