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타고난 DNA?… 생활방식이 유전자를 조종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4일 03시 00분


◇인간은 유전자를 어떻게 조종할 수 있을까
페터 슈포르크 지음·유영미 옮김/328쪽·1만6000원·갈매나무

“유전학의 시대는 한물갔고, 이제 우리는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epigenetics)의 시대를 맞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루돌프 예니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화이트헤드 생명의학연구소장의 선언이다.

이 책은 최근 급부상하는 후성유전학의 세계를 소개한다. 후성유전학은 세포에 저장되고 딸세포로 전달되지만 유전형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분자생물학적 정보들을 다룬다. 그 대상인 후성유전체는 유전체에게 잠재력 중에 무엇을 활용해야 할지 말해주는 존재다. 즉 세포가 빠르게 노화할지, 느리게 노화할지, 쉽게 질병에 걸릴지를 결정한다.

독일의 신경생물학 박사로 학술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저자는 후성유전체가 껐다 켰다 하는 스위치처럼 우리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의 이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절대자라고 믿었던 유전자의 위치가 한 단계 내려오고, 생활방식 영양 인간관계를 개선하면 유전자를 조종해 체질 신진대사 인성까지 바꿀 수 있다는 혁명적인 주장이다.

비슷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쌍둥이의 모습이 나이가 들수록 크게 달라지는 이유도 생활방식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생활방식을 기억하는 후성유전체는 난세포와 정세포로 자녀, 손자에게 대물림돼 후손의 화복까지 결정한다.

후성유전학의 눈으로 보면 점점 뚱뚱해지는 인류의 비밀이 풀린다. 잘못된 생활습관을 가진 어머니는 본인만 살찔 뿐 아니라 자신의 세포를 물려받은 자녀도 뚱뚱하게 만든다. 뚱뚱한 어머니가 뚱뚱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뚱뚱한 어른이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이유다.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건강 책으로 변신한다. 후성유전학이 바꾸는 우리의 삶이란 결국 오래 살고자 하는 건강 문제로 귀결된다. 산모 건강의 중요성, 술 담배의 해악, 운동과 소식의 이로움을 근거로 설명하니 후성유전학이 조금 가깝게 다가서긴 하지만, 후성유전학의 의미가 인류 태초의 신비를 찾아가기보다는 ‘암 치료=무병장수’ 도식으로 이어진 점은 아쉽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인간은 유전자를 어떻게 조종할 수 있을까#DNA#생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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