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버선코 닮은 신관, 대학 대표 얼굴로 활짝
경사로에 어울리는 창없는 곡면으로 시선 붙잡아
설계자 이은석 교수 “신축비용 반값에 리모델링”
서울 동작구 사당동 총신대 정문을 지나다 보면 발걸음이 절로 멎는다. 완만하게 휘어진 언덕길 오른편에 두루마리처럼 펼쳐지며 시선을 가득 메우는 건물. 올해 초 리모델링을 마친 신관이다. 남쪽 정문을 향해 버선코처럼 들린 외관에 마지못한 듯 불규칙한 창 몇 개를 낸 것이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을 닮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설계자가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한 이은석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코마건축사사무소 대표)다. 그의 스승 앙리 시리아니가 르코르뷔지에의 제자다.
원래 이 건물은 평범한 6층짜리 상자형 건물이었다. 이 교수는 기존 건물 기둥에 철골 캔틸레버(외팔보)를 설치한 뒤 베이지색 사비석으로 외피를 둘렀다. 학교 경사로의 커브와 일치하는 이 곡면 덕에 밋밋했던 학교엔 뚜렷한 표정이 생겼다.
“곡선은 시공이 어렵고 기능적이지 못하다고들 여깁니다. 하지만 큰 공간의 로비나 홀과 같은 공용 공간에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도시의 풍경이 훨씬 풍요로워지죠.”
이 교수는 기존 건물에 나 있던 큰 창도 없앴다. 이른바 ‘무창(無窓) 건축’이다. 사무실이나 강의실이 몰려 있는 1, 2층의 입면은 빛을 가리지 않도록 외피를 씌우지 않았고, 3, 4층에도 채광이 필요한 부분에만 최소한으로 창을 냈다. 5, 6층은 기존의 음악당 2층 발코니를 막아 만든 연습실이어서 창이 필요하지 않다.
“창은 흉터 같은 존재입니다. 창이 많으면 건물의 형태는 보이지 않고 창만 보이게 돼요. 곡면의 볼륨을 살리려면 창이 없어야죠. 창의 개수가 모두 66개로 성서를 뜻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정확한 숫자는 저도 모릅니다.” 입면에 뚫어놓은 네모 중 일부는 창이 아니라 조명이다. 밤이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낮과는 다른 밤 풍경을 그려낸다.
이 건물은 학교 건물이자 종교 건축이다. 버선코처럼 들린 곳의 아래는 ‘묵상의 공간’이다. 이곳에 서서 머리를 뒤로 젖히면 철골 십자가를 통해 하늘이 올려다보인다. 건물 입구의 파랑 노랑 빨강 기둥은 차례로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교리를 뜻한다. 북쪽 끝엔 새벽을 깨우는 종, 그리고 남쪽 꼭대기엔 십자가가 서 있다. 상자 속 십자가는 100개가 넘는 교회를 설계한 이 교수의 시그너처와 같은 것이다.
이 교수는 그동안 “왜 교회는 뾰족 첨탑 모양이어야 하느냐”며 모더니스트답게 절제된 상자 모양의 교회 건축을 선보여 왔다. 그래서 총신대 신관의 곡면 설계를 종교 건축가로서 이 교수의 전환점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그의 당선작인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설계안(2010년)도 움푹한 커브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폭풍을 피할 수 있는 포구처럼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어머니처럼 품어주는 교회가 됐으면 한다는 뜻을 담은 설계다.
“건축이 오브제가 아니라 연극 무대 같은 배경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은 (곡선이든 직선이든) 조형적인 제스처를 절제하는 대신 다른 것들이 담길 수 있도록 최소한의 껍데기를 만드는 것이죠.”
이 교수는 총신대 신관 작업을 통해 리노베이션의 가치를 실감했다고 했다. 비용은 3.3m²당 300만 원 미만으로 신축 비용의 절반. 기간은 설계 2개월, 시공에 4개월이 걸렸다.
“신축은 건축법규가 강화돼 불리한 점이 많아요. 리노베이션은 기존 면적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원 절약이라는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와도 부합하고요. 신축 수요가 줄어들면서 리노베이션의 가치는 더욱 주목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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