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의 대형서점 자기계발서 판매대는 책 고르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놓인 책들은 행복과 성공, 힐링, 긍정을 약속한다. 28일 만난 ‘거대한 사기극’(북바이북)의 저자 이원석 씨(40)에게 “저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물었다. 그는 에둘러 답하지 않았다.
“불쌍합니다.”
중앙대 대학원 문화연구학과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인 이 씨는 지난해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에 ‘자기계발 다시 읽기’를 연재했다. 그는 이 연재물을 바탕으로 약 300권의 자기계발서를 분석해 한 권의 책으로 옮겼다.
이 씨의 어머니는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이 씨도 어릴 적부터 관련 책과 강연테이프를 많이 접하며 컸다. 어머니가 추천한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재밌게 읽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를 쓴 서동진 계원예대 교수를 만나며 생각이 바뀌었다.
이 씨는 “사회적 안전망이 두터운 시절엔 자기계발서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각자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엔 버티기 위한 에너지를 주는 정신적 진통제일 뿐이다. 자위행위, 마약과 같다”고 일갈했다.
미국 픽업아티스트 미스터리(필명)가 쓴 ‘미스터리 메써드’에선 여성 접근 공포증을 앓는 자신감 없는 남성들이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섹시하고 당당한 남성으로 탈바꿈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인간관계에 실패하고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다. 이 씨는 “자아를 억압한 채 무리하게 자신을 바꾸면 결국 억압된 자아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행복 전도사를 자처한 사람들의 말로가 안 좋은 것도 그 이유다”라고 말했다.
그의 비판엔 예외가 없다. 기독교 신자인 이 씨는 기독교 자기계발서에 대해서도 무속과의 결합, 돈과 권력에 대한 존중, 반공주의를 들어 비판했다. 자기계발서를 쓴 안철수 의원을 두고도 “그는 성실하게 양심적으로 살아왔고 진정성도 믿는다. 다만 그가 그린 사회는 자기계발적인 사회이고, 선한 의도와 달리 사람들을 더 피로하게 만들 뿐이다”라고 했다.
이 씨가 꺼내든 칼끝은 자기계발서를 권하는 한국사회를 향한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지고 각자도생(self-help)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그는 진단한다. 결국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에게 떠넘기면서 자기계발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는 이제 사회를 지금처럼 굴러가게 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 작동합니다. 이 시대에는 모든 책이 자기계발서처럼 쓰이고, 자기계발서처럼 읽히고 있어요. 심지어 고전마저 ‘엑기스’만 보면 된다고 하는데, 고전 주인공들이 알면 피를 토하며 쓰러질 겁니다.”
이 씨의 대안은 스스로 돌봐야 하는 자조(自助)사회가 아닌 서로 돕는 공조(共助)사회로 가는 것. 그는 “책을 읽은 사람이 ‘분석은 정밀한데 결론이 나이브해 실망이다’라고 하는데, 그런 지적을 인정하지만 공조사회가 절대 불가능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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