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자리에 앉는 편이 좋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관객이 방심하고 있는 새 슬그머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1부 시작 직전과 인터미션 중반쯤 어둑어둑한 무대 위로 후줄근한 평상복 차림의 두 남자가 올라와 분주히 소품을 늘어놓는다. 배치가 대강 마무리되나 싶을 즈음 또 한 남자가 들어와 한쪽 구석 피아노 앞에 앉는다.
‘자, 이제 배우들이 올라오겠구나.’
하지만 그대로 조명이 밝아지고 스태프로 보이던 두 남자가 객석 쪽으로 돌아선다. 이 두 사람이 125분간 관객이 만날 배우 전원이다. 노래를 돕는 건 피아노 한 대뿐.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도, 현란한 조명도, 알록달록한 의상도, 으리으리한 세트도 없다. 얼핏 허전해 보이는 무대를 채우는 것은 시종 흥미진진함을 잃지 않는 이야기와 매력적인 노래다. 잡다한 치장 싹 걷어낸 뮤지컬의 골격이 무엇인지 확인해보라는 듯한 파격이다.
브로드웨이 진출을 꿈꾸는 무명 뮤지컬 작가 버드(송용진)와 더그(정원영). 이들은 ‘중세 독일 한 작은 마을의 포도주 생산자 구텐버그가 우연히 인쇄기를 발명해냈다’는 내용의 대본을 완성한다. 뮤지컬 ‘구텐버그’가 보여주는 것은 이 두 사람이 제작투자자들을 위해 준비한 리딩(reading) 공연이다. 무대장치 없이 대본만 읽는 간이 공연에 나서줄 배우를 구할 돈조차 없는 탓에 달랑 둘이서 수십 명 역할을 번갈아 나눠 맡아 연기한다. 야구모자 수십 개에 ‘구텐버그’ ‘사악한 수도사’ ‘술주정꾼’ ‘나이든 흑인 해설자’라 적어놓고 해당 배역이 등장할 때마다 모자를 쓴 뒤 목소리와 몸동작을 바꾼다.
시커먼 사내들이 새된 목소리로 ‘가슴 큰 시골 여인 헬베티카’와 ‘유대인을 싫어하는 꽃 파는 소녀’의 모자를 뒤집어쓸 때 이 뮤지컬은 모 아니면 도의 도박을 건다. 연기와 노래가 조금이라도 어색할 경우 허름한 무대 위 모든 것이 참고 봐주기 어려운 관객모독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치 빈틈도 없다. 양손에 모자 여러 개를 나눠 쥐고 앙상블 합창인 척하는 식의 우스꽝스러운 장면. 두 배우의 담백한 목소리가 절묘하게 교차하며 진가를 발휘한다.
두 사람은 간간이 모자를 벗고 작가로서 뮤지컬 극작 과정을 설명(하는 체)한다. 그 농담의 표적은 클리셰(상투적 표현)에 스스로를 옭아맨 대작들이다. “1부에 잔뜩 일 벌여놓고 2부는 (관객을) 졸게 만들다가 장엄한 피날레로 얼렁뚱땅 수습하죠.” “스토리와 무관한 역사적 배경을 왜 끼워 넣느냐고요? 진지하게 보여야죠!” 그 밥에 그 나물 뮤지컬 무대에 지친 관객에게 ‘구텐버그’는 가뭄에 단비 같은 선물이다. 2006년 오프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뉴욕타임스는 “역사적 사실을 뻥튀기한 스토리, 뻔한 은유를 남발하는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보기 드물게 영리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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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킹, 스콧 브라운 작. 김동연 각색·연출. 장현덕 정상훈 더블캐스트. 11월10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4만4000∼5만5000원. 02-3485-8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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