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21번째 시집 ‘별 밭의 파도 소리’를 펴낸 오세영 시인. 다작 시인으로도 유명한 그는 “시를 쓸 때만큼은 나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된다”며 “그침 없이 시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성=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 오세영 시인(71)이 1년 만에 펴낸 21번째 시집 ‘별 밭의 파도소리’(천년의시작)의 저자 소개란을 보면 단출함을 넘어 휑한
느낌마저 받게 된다. 서울대 교수(국문학)와 시인협회장 경력은 물론이거니와 목월 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만해 문학상 같은 다수의
수상 경력도 찾아볼 수 없다. 시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시 그 자체로 냉정한 평가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정보
말고는 다 빼버렸지요.” 신작 시집은 시인이 3년 전 경기 안성의 한 골짜기에 지은 아담한 전원주택에서 쓴 시 60편을 엮었다.
자신의 호를 따 ‘농산재(聾山齋)’라 이름 붙인 이곳에서 시인은 일주일에 사나흘씩 머물며 시작에 전념했다. 2일 찾은 농산재의
처마 끝에선 맑은 풍경소리가 퍼지고, 마당에는 시인이 기르는 진돗개 ‘또순이’와 삽살개 ‘꽃님이’가 장난치며 뛰놀고 있었다. 》
“한밤중에 산에서 고라니가 내려와 현관 전등 센서가 작동하는 바람에 자꾸 불이 켜져서 놀란 적도 많았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마당 잔디밭에 이슬을 마시려 나타나는 꽃뱀 녀석이 한 마리 있는데, 오늘은 어째 눈에 띄질 않네요.”
때로는 호젓하고 때로는 적막한 이 공간에서 시인의 펜은 자연을 노래했다. ‘청록파 시인’으로 유명한 박목월 선생(1916∼1978)의 순수시 전통을 계승한 시인답게 그의 시에는 의인화돼 육체성을 부여받은 자연물이 자주 등장한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기면서도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벽을 넘는 담쟁이에서 시인은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정신을 읽어내고(‘담쟁이’) 계곡의 콸콸대는 여울물 소리에서는 ‘바리케이드를 향해 돌진하는 시위 군중의 울부짖음’을 들었다(‘여울물’).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는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시도 쓰곤 했어요. 그런데 정년퇴직(2007년)을 하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주변 사물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아라비아숫자 0부터 9까지를 각각 소재로 삼아 연작 형식으로 쓴 시는 독자에게 다소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늘과 땅 사이의 그 팽팽한 긴장/그 높이를 붙들고 고민하는 한 인간의/절망하는 모습을 보아라./발은 굳건히 대지를 딛고 있으나/그의 머리는 당당히 푸른 하늘을/이고 있다.”(‘9’ 중에서)
알파벳 문자를 소재로 한 독일의 ‘문자시’ 형식에 착안했다는 이 시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자신의 시를 거듭나게 하려는 시인의 부단한 노력을 보여준다. “나이 들었다고 옛 스타일만 고집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앞으로 쓸 시에도 해보고 싶은 실험이 정말 많습니다.”
스스로를 ‘왕따’라 칭하는 시인은 문단의 쓴소리꾼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특히 창작과비평사(창비)와 문학과지성사(문지)로 상징되는 문단 주류에 대한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창비는 문학을 정치의 도구로 보고 과도한 정치성을 보이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문지 역시 마피아 같은 제 식구 챙기기의 구태를 던져버리지 못하고 있어 큰일입니다.” 그는 이런 구습에 때 묻지 않은 새로운 작가 세대가 등장해 문단을 이끄는 것 외엔 해답이 없다고도 했다.
이 때문일까. 시인은 최근 시론과 시창작론 집필에 힘을 쏟고 있다. 좋은 시를 알아보는 안목과 좋은 시를 쓰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과서를 쓰고 있다는 것. “교수로 있을 때는 논문과 작품 쓰기에 치여 자꾸 미뤘는데, 학교에서 물러나고 나니 비로소 교과서가 쓰고 싶어졌어요. 바리공주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장시(長詩)에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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