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이는 사회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김남섭 옮김/1권 560쪽, 2권 604쪽/각 2만3000원·교양인
스탈린시대 가족사 추적 통해 소비에트 유토피아의 허구성과 비인간성 고발
얼핏 서정적으로 보이는 이 책의 제목엔 피를 얼어붙게 만드는 섬뜩함이 숨어 있다. 책의 원제인 ‘The Whisperers(속삭이는 사람들)’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단어엔 두 가지가 있다. ‘누가 엿들을까 두려워 소곤거리는 사람(shepchushchii)’과 ‘사람들 몰래 당국에 고자질하거나 귓속말을 하는 사람(sheptun)’이다.
그렇다. 이 책은 옛 소련 시절 러시아인들을 이런 두 종류의 사람으로 전면 개조시켰던 스탈린 시대를 다루고 있다. 소련이 망한 지 언제인데 아직도 스탈린 시대 타령이냐고 염증을 느끼는 독자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스탈린의 망령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엄연히 대한민국 영토의 절반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스탈린 체제 아래 신음하고 있다. 나머지 절반의 영토에서도 스탈린 시대가 주조한 ‘당과 혁명에 대한 충성심’을 아직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면서 민주화 투사인 양 이중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잔존해 있다. 전자가 두려움에 소곤거리는 사람들이라면 후자는 남쪽의 사정을 북쪽에 고자질하는 사람으로 대비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스탈린주의의 폐해는 당시 소련 인구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2500만 명을 ‘계급의 적’으로 몰아 살해 감금 억압한 공포정치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를 통한 공포와 수치심을 사람들 사이에 주입해 두려움과 비열함을 하나로 내면화한 채 평생을 살아가게 만든 데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가 스탈린 시대를 살았던 일반인들의 일상사와 가족사를 추적해 1200쪽 가까이 담아낸 이 책은 스탈린주의의 비인간성을 그 어떤 책보다 처절하게 고발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태어난 사람들이 당과 혁명에 목숨을 바치도록 세뇌당하면서 겪어야 했던 내면의 고통과 상처, 상실감을 생생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부모가 종교적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고, 근면성실한 자작농임에도 쿨라크(부농)라고 몰려서, 볼셰비키의 정적이었던 멘셰비키 출신이라고,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계급의 적’으로 몰린 사람들이 그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과 자신을 속이며 살았던 이야기가 가슴을 후벼 판다.
혁명투사인 친부를 10여 년 만에 만났건만 서로 아는 척도 못 하다가 “배가 고프다”며 한 끼니 때울 돈만 받고 헤어진 여인, 부모가 체포되면서 졸지에 혼자가 된 아이들을 매정하게 내쫓는 친척과 이웃들, 서로가 ‘계급의 적’ 출신임을 감추고 공산당원이 됐음을 결혼생활 40년 뒤에야 알게 된 부부, 강제수용소에서 3년간 1만8000여 건 총살의 상당수를 집행하고 그때마다 보드카 한 병을 받은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못 느끼는 경비병….
소비에트체제는 사회주의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혁명의 대의를 앞세워 가족 간의 유대감, 친구와의 우정, 남녀 간의 사랑을 모두 부정하고 당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파블로프의 개’를 양산하려 했다. 한편으론 자연스러운 인간성의 발현을 파괴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차르 시대 귀족의 선민의식을 공산당원에게 고스란히 전이시킨 이 기괴한 실험이 70여 년이나 지속된 원인이 어디 있을까.
정치경제사의 거대담론에만 익숙한 시대착오적 좌파들은 이를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능동적 열정에서 찾는다. 하지만 그 전대미문의 비극적 실험이 인간정신을 얼마나 불구화했는지 미시사적으로 접근한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소비에트 사고방식은 대부분의 경우 옛 가치와 믿음이 금지당하거나 억압당해 자리를 내준 의식의 영역을 차지했다. 사람들은 소비에트 식으로 되려는 불타는 욕망이 아니라 수치심과 공포 때문에 소비에트 사고방식을 받아들였다.”
책을 읽다 보면 혁명가 레닌과 독재자 스탈린을 구별하려는 일부 좌파의 시도도 무의미하게만 느껴진다. 소비에트의 광기 어린 실험은 1917년 레닌에 의해 시작됐다. 플라톤의 ‘국가’에나 등장할 법한 공상사회를 만들려 한 그 실험실에선 혹시 자신에게 닥칠지 모르는 모멸감에 침묵하는 방관자와 “나 말고 저 사람을 데려가세요”라고 절규하고픈 공포심에 사로잡힌 협력자가 만들어졌다. 그들의 방관과 조력의 속삭임 속에서 스탈린이라는 괴물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일찍이 최인훈은 소설 ‘광장’에서 남한이 밀실만 있고 광장이 없는 체제라면 북한은 광장만 있고 밀실이 없는 체제라고 갈파했다. 하지만 ‘속삭이는 사회’는 최인훈이 간과했던 스탈린주의 체제의 역설까지 꿰뚫는다. 겉으론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내는 광장을 표방하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정체를 자신만의 밀실에 꼭꼭 숨기고 산다고.
따라서 ‘광장’이 발표되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 메시지는 이렇게 수정돼야 한다. 남한에선 비록 불만족스럽고 불안하더라도 밀실과 광장의 동거가 이뤄지고 있지만 북한에선 밀실과 광장이 모두 모래먼지에 뒤덮여 사라진 채 광인의 외침과 유령의 속삭임만 배회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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