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시부야에 가면 하치코 동상이 있다. 매일같이 퇴근하는 주인을 맞으러 기차역으로 갔던 충직한 개 하치가 주인이 죽고 나서도 매일 주인을 만나러 기차역으로 갔던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리며 만들어진 동상이다. 흔히 ‘충직한 동물’의 표본으로 개를 꼽지만 영국에서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그것은 바로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 ‘봅’ 때문이다.
제임스 보웬(34)은 10년 넘게 마약중독자로 방황하며 길거리가수(버스커)로 살았다. 그러던 2007년 어느 날 길에서 주운 유기묘 봅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다. 자기 한 몸조차 제대로 건사할 수 없었음에도 제임스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다친 봅을 거두어 간호하게 되고, 곧 봅과 제임스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유명 관광지 코벤트가든 앞에서 제임스의 기타와 노래에 맞춰 봅이 재주를 피우는 공연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제임스와 봅의 우정에 감동한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내 어깨 위 고양이 봅(A Street Cat Named Bob)’이란 책이 2012년 출간됐다. 유진 오닐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를 패러디한 제목의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25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봅은 유명 토크쇼에 초대되며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가 됐다. 제임스는 추위로부터 봅을 보호해 주기 위해 낡은 빨간색 목도리를 그에게 둘러 주었는데, 빨간 목도리를 걸친 봅의 사진이 미디어에 소개되자 전 세계에서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목도리들이 선물로 보내졌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1년 후, 봅과 제임스의 끝나지 않은 우정이 속편 ‘고양이 봅이 보는 세상(The World According to Bob)’으로 출간됐다. 첫 번째 책이 제임스와 봅의 만남을 그렸다면, 두 번째 책에서 제임스는 봅이 그에게 어떠한 삶의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그린다.
어느 날 저녁, 제임스와 봅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약 중독으로 죽어가는 한 부랑자를 만나고, 그의 죽음을 목격한다. 제임스는 봅을 못 만났다면 자신도 그 부랑자의 운명을 맞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봅은 제임스를 마약중독에서 구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삶에 희망을 줬다. 제임스는 봅과 함께 살아가며 우정, 신뢰 그리고 충직함이 무엇인지를 배워가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또한 똑똑하고 재치만점의 고양이 봅은 그에게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선사한다. 처음 봅을 구해준 것은 제임스였지만 결국 제임스는 봅으로부터 그의 지난 과거의 상처를 치유받고 행복해진다. 영국인들이 이렇게 봅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각종 첨단 기기에 둘러싸인 우리 현대인들이 사실은 얼마나 정과 사랑에 목말라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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