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소설 쓰기란 신기한 물건이 계속 튀어나오는 모자 마술과 같아요. 이번엔 또 뭐가 나올까 하는 설렘과 흥분, 약간의 두려움이 뒤섞여 짜릿한 기분이 들지요.”
이스라엘 소설가 에트가르 케레트(46)의 국내 첫 번역 소설집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문학동네)를 읽은 독자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설명이다. 유머와 아이러니,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꿈과 현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그의 마술에 집중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해 미국 아마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전 세계 22개국에 판권이 팔린 이 책의 한국어판을 들고 방한한 케레트를 9일 서울 홍익대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의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엄청 짧다는 것. 서너 쪽짜리 작품은 예사고, 길이가 단 세 줄에 불과한 소설도 있다. ‘초단편’이라 해야 할까. “어렸을 때 천식을 앓았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기침이 나기 전에 짧게, 그리고 중요한 말만 하는 습관이 생겼죠. 장편보다는 짧은 이야기 형식이 우리네 삶을 훨씬 직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하고요.”
작가는 짧지만 응축된 이야기 속에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든 폭력성과 그로 인한 공포와 불안, 자아의 분열상을 담아냈다. 영문도 모른 채 깡패에게 납치당하는 모험과 저녁식사 후 디저트를 고민하는 일상이 기괴하게 공존하거나(‘푸딩’), 연인의 입속에 달린 지퍼를 열면 그 속에서 낯선 이방인이 튀어나오는 환상(‘지퍼 열기’)이 등장한다.
“소요와 포격이 빈발하는 이스라엘에서 산다는 것은 늘 불안과 긴장을 동반합니다. 높은 장벽을 쌓고 장벽 안의 것을 지키려 싸우다 보니 내면에는 억압하거나 무시한 감정과 충동이 켜켜이 쌓여 있죠. 제 소설은 그런 감정과 충동의 배출구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의 꿈과 거짓말이 수시로 현실을 간섭하기에 그 결론을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죽으면 작가인 저 스스로도 충격을 받는 글을 쓰려 합니다. 저는 제 작품의 첫 번째 독자니까요. 결론을 정하지 않은 글을 쓰고 있을 때 저는 모험을 떠난 듯한 흥분과 설렘을 느낍니다.”
독특한 스타일과 문제의식 덕분에 미국과 유럽의 평단에서 ‘이스라엘의 카프카’라는 찬사도 받지만 소설 쓰기는 그의 재능 중 일부일 뿐이다. 케레트는 동화와 만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도 왕성히 활동하는 전천후 이야기꾼이다. 2007년에는 아내와 공동 연출한 영화 ‘젤리 피시’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장편영화 신인감독상)도 받았다. 그는 요즘 TV 영화용 시나리오를 다듬는 작업에 빠져 있다. “부동산중개업자 이야기인데요. 똑같은 집의 쓰임을 고객마다 전혀 다르게 소개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에 초점을 맞춘 유쾌한 영화가 될 겁니다. 이르면 올해 안에 프랑스에서 촬영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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