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스파이가 된 설경구, 유머본능 번쩍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2일 03시 00분


영화 ‘스파이’서 코믹연기 척척

설경구는 “좋은 시나리오를 만나면 새로운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necut@donga.com
설경구는 “좋은 시나리오를 만나면 새로운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necut@donga.com
배우 설경구(45)와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진지함에 가려진 유머 감각이 매력적이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사진 촬영이 빨리 끝나자 “기자님, 대박!”이라며 웃었다.

요즘 설경구의 일과는 스마트폰과 함께한다. 통화보다 문자로 이야기하는 걸 즐긴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영화 후기를 자주 읽는다.

“‘감시자들’의 시사회 때 제작사 대표가 ‘반응이 괜찮은 것 같다’며 스마트폰을 들이밀더군요. 슬쩍 봤는데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글들이 신기했어요. 이번 영화(스파이)는 호불호가 갈리던데요? 관객들이 그렇다는데 어쩌겠어요. 하하하!”

웃음을 보였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랜만에 코믹 연기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어서다. 다행히 개봉 첫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주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설경구는 영화 ‘스파이’(감독 이승준·제작 JK필름)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스파이 철수 역을 맡았다. 밖에서는 인정받지만, 와이프 영희(문소리)에게는 꼼짝 못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문소리의 잔소리에 쩔쩔매는 설경구의 모습이 유쾌하다. 두 사람은 ‘오아시스’ 이후 11년 만에 재결합했다.

“(문)소리와는 아무런 상의 없이 연기했어요. 서로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요. 코믹 연기라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했죠.”

‘스파이’는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왔다. 처음에는 ‘미스터 K’라는 제목으로 이명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나 돌연 감독이 교체됐다. 이승준 감독이 투입돼 무사히 촬영을 마쳤지만 설경구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의 코미디와 이명세 감독의 영상미가 결합돼 괜찮은 영화가 탄생할 거라 기대했어요. 그런데 감독이 바뀌면서 스타일이 달라졌죠. 코미디의 비중이 커졌어요. 웃음은 있지만 다소 평면적인 영화가 된 것 같아요.”

감독이 교체될 당시 설경구도 하차를 고민했다. 그의 마음을 돌린 건 함께 땀을 흘린 동료 배우들이었다. 문소리, 고창석, 다니엘 헤니 등 친구처럼 지낸 배우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설경구는 “서로 사는 이야기도 하고, 속내를 털어놨다”며 “이들이 없었다면 영화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 작품이에요. 절대 허투루 찍지 않았어요. 가족들과 즐겁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설경구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딸이 좋아하는 아이돌그룹 JYJ의 소속사에 새 둥지를 틀었다. 딸과 JYJ의 공연을 보러 다니고, 인증샷을 촬영하는 재미에 빠졌다. 그는 “딸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소통하기 힘들었는데 JYJ 덕분에 대화를 자주 하게 됐다”고 말했다.

9월 ‘스파이’가 돼 관객들을 웃긴 설경구는 10월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폭력 피해 어린이와 부모의 감동 실화를 담은 영화 ‘소원’(감독 이준익)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나리오를 읽다 책을 덮은 것만 수차례. 마음이 아파 끝까지 읽기 힘들었다.

“지난 사건을 들춰 피해자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아 출연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피하지 말고 앞을 보자’고 하더라고요. 사회구성원으로서 피하면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어요. 열심히 촬영한 ‘스파이’와 ‘소원’ 많이 사랑해주세요.”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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