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기전인 국수전은 1956년 첫선을 보였다. 올해로 57회까지 한 해를 빼고 매해 진행됐다. 첫해 출전 기사는 16명. 일제강점기 때부터 활약하던 내로라하는 노국수들이 많았다. 그래서 첫해 국수전의 명칭은 ‘국수1위전’이었다. 국수 중의 국수를 뽑는다는 의미로 노국수들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한 기전 명칭이다. 이 이름은 10회까지 계속됐다.
6일간 16명이 벌인 예선 리그전의 총 대국 수는 105판. 당시 조남철 5단 등 4명이 본선에 올라가 대결을 펼친 결과 조 5단이 3승으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국내 공식기전 1호 우승이었다. 조 국수는 이후 9연패라는 위업을 이뤄냈다. 영원한 국수였다.
우변 공방이 일단락되자 이희성 9단은 좌하귀를 움직였다. 66으로 젖혀 좌하귀에서 살고자 한다. 68로 한 번 더 밀어간 수는 민상연 2단이 생각지 못한 수. 당초에는 참고 1도처럼 흑 1, 3으로 두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이내 백 14까지 된 그림을 머릿속에서 그렸더니 백이 좋아 보이더라는 것이다.
민 2단은 실전에서는 69로 단수 치고 71로 두어 백을 살려주는 쪽을 택했다. 애초에 68로 72의 곳에 사는 것을 생각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이제 흑도 유리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그나마 73을 선수할 수 있어 흑도 다행. 74는 좌중앙 흑의 모양을 견제한 수.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변에 받아주는 것이 정수였다. 민 2단은 75로 날카롭게 백의 허점을 파고든다. 참고 2도처럼 백 1로 받는 것은 흑 2의 붙임이 준비돼 있다. 흑 8까지 백 2점이 꼼짝없이 잡힌다.
실전에서 백은 76으로 젖히는 수를 택했다. 흑이 이어주면 물러서 ‘가’로 효율적으로 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백은 77로 끊어서 반발했다. 82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백은 흑이 준비한 맥점을 막기는 했지만 우변에 보태준 손해가 컸다. 흑의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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