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의 청아한 목소리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경건하면서도 아늑한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카운터테너에게 익숙한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 대신 독일 가곡으로만 가득 채운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맞았다.
공연의 정점은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였다. 숄은 죽음의 공포에서 달아나려고 몸부림치는 소녀에서는 가성으로, 사신(死神)에서는 바리톤 음역대로 냉혹하고 엄숙하게 죽음을 선고했다. 낯설지 않은 가곡이지만 숄의 시도는 완전히 다른 노래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그의 음색은 독일 가곡에서도 여전했다. 하이든의 ‘절망’으로 시작해 슈베르트의 ‘숲에서’ ‘언덕 위의 젊은이’를 거쳐 브람스의 ‘고요한 밤, 첫 순찰 때’, 모차르트의 ‘저녁의 느낌’으로 마무리할 때까지 무엇 하나 걸리는 것 없이 매끄럽게 흘러갔다. 그의 노래는 포근하면서도 유연했고, 발음과 기교도 정교했다. 하지만 가성으로 노래하는 카운터테너의 특성상 다소 단조롭게 들리는 한계도 있었다.
공연 프로그램이 학구적이었다면, 앙코르에서 숄은 관객의 감성에 바짝 다가섰다. 그가 요즘 즐겨 듣는다는 이스라엘 뮤지션 이단 라이헬이 그를 위해 만든 ‘조용한 밤’에 이어 우리 민요 ‘아리랑’을 선사했다. 재즈가수 나윤선의 음반을 들으면서 연습했다고 한다. 그는 2000년 ‘아리랑’을 수록한 음반을 내기도 했다. 숄은 무대 스태프에게 “내가 부른 아리랑이 어땠나. 발음은 괜찮았는가”라고 질문하며 반응을 궁금해했다.
피아노 반주는 그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타마르 할페린이 맡았다. 피아노는 시종일관 앞서는 법이 없이 정갈하게 노래를 빛냈다. 프로그램이 지루하지 않도록 중간 중간에 독주로 연주한 슈베르트의 왈츠 6번, 브람스 인터메조 2번, 모차르트 론도 F장조는 피아니스트의 기량을 증명해 보였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마스트미디어 측은 “숄이 목을 보호하기 위해 휴식할 때도 할페린은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숄의 내한 리사이틀은 두 차례 더 남아 있다. 26일 경기 오산시 오산문화예술회관, 27일 인천 부평아트센터에서 그의 맑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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