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아무도 없는 수영장을 바라보고 섰다. 곧장 뛰어들지 않는 까닭이 무얼까 싶다가 잔잔한 수영장 귀퉁이의 작은 움직임을 발견한다. 소년도 보았을까? 이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소란을 떨며 주저 없이 수영장에 뛰어든다. 잔잔함은 사라지고 물위는 온통 시끌벅적하다. 물장구치는 사람들 사이로 작은 움직임도 사라졌다. 망설이던 소년도 가만히 발을 넣고 물 아래로 과감히 헤엄쳐 들어간다.
글 없이 그림만으로 서사가 완성될 수 있다는 점이 그림책의 장점이다. ‘수영장’은 글이 없는 그림책이다. 그림을 보는 동안 머릿속엔 이야기가 읽힌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보통은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림 읽는 법을 잊는다. 그림책은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나 맞는 책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림을 읽으며 자기의 서사를 완성하는 동안 문학의 참맛을 알게 된 아이들은 글씨를 읽으라는 강요 때문에 책을 멀리하게 된다. 글씨는 알아도 문맥은 읽어 내지 못하는 아이들의 불안을 그림이 채워 준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다. 이는 현재 우리 그림책 작가들의 큰 과제이기도 하다. 구매자의 요구에 맞춘 글이 많은 그림책이 끝도 없이 출간되는 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점점 줄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즈음에 나온 ‘글 없는 우리 그림책’ 몇 권이 정말 반갑다. 그중 ‘수영장’은 다른 세상을 만나 뛰어들고 거기서 새로운 만남과 소통, 함께 즐기며 가는 모습들이 따뜻하게 흐른다. 시원하면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부드러운 색연필을 사용한 까닭이다. 선을 위한 재료인 연필과 색연필로 면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공들였을지 짐작되는 그림이다.
이야기가 풍성하게 떠오르는 책이다. 국어 수업은 받아도 문학 수업은 받아 보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 글 없는 그림책만 모아 읽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림’을 읽으며 문학을 발견한 아이들이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재미있는 책들을 찾아다닐 수 있게 된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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