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어르신은 흔히 ‘효도관광’이라 불리던 여행의 형태를 벗어나 20대 배낭족처럼 파리 시내를 누볐고 스위스를 거쳐 대만까지 휘젓고 다녔다. 여행업계 관계자들은 방송이 나간 이후 특히 대만으로 향하는 여행객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할배들의 활약에 용기를 얻은 실버 계층은 요즘 젊은이들처럼 온라인을 통해 직접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해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인터파크의 경우 60대 이상 고객의 비중은 전체의 2.4%에 불과하지만 방송이 나간 이후인 올 8월 이후 60대 남자는 전월 대비 20%, 전년도 8월 대비 46% 늘어났고, 60대 여자는 전월 대비 119%, 전년도 8월 대비 117%나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유여행(FIT)이 실버 세대의 새로운 여행 패턴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대세는 패키지 상품이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이후로 패키지여행 상품 중 중국 베이징과 태국 방콕 파타야는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중장년층이라면 한 번쯤 가봐야 하는 여행지가 됐다.
베이징은 비행시간도 짧은 것이 큰 장점이다. 중국의 다른 지역의 여행상품이 이동과 관광 중심인 반면 베이징은 온천도 즐기고 자유시간도 갖는 등 여유 있는 일정이 가능해지면서 여전히 인기는 꾸준하다. 방콕은 동남아에서도 가장 이국적인 문화와 맛깔스러운 음식 등을 즐길 수 있다. 최근에 인기를 끌기 시작한 곳은 베트남이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기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음식도 입에 맞는 편이기 때문이다.
유럽, 미국, 호주 등의 장거리 여행 수요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아시아 지역의 여행 경험이 있고 또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이 많이 선택한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은 유럽여행의 기본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꽃보다 할배’에서도 프랑스, 스위스가 소개되는 등 ‘유럽여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이다. 유럽은 인솔자가 동행하기 때문에 일단 다른 지역에 비해 여행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최근에는 동유럽을 비롯한 터키와 스페인을 찾는 중장년층의 발길도 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하는 중장년층 여행객 중 일부는 관광도 하고 현지에서 살고 있는 가족과 지인들도 만나는 일거양득의 여행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의 항공편은 출발일 기준 15일 이내에 무료로 귀국 일을 연장할 수도 있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의 관광 일정을 마치고 귀국일을 변경해 현지에서 며칠 더 체류하는 형태다.
호주는 시니어들의 관심이 높은 여행국가 중 한 곳으로, 특히 호주의 안정된 노인복지 정책은 노후생활을 보내기에 가장 이상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뛰노는 캥거루, 코알라, 딩고 등 호주 야생동물을 관람할 수 있고 또한 관광자원도 풍부한 곳이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시드니 골드코스트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상품이 베스트셀러다.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장기간 진행되는 여행도 실버계층이 주류다. 젊은층은 돈은 있지만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떠다니는 호텔’ 크루즈 여행 역시 비교적 기간이 긴 편이며 이동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실버계층에 가장 적합한 상품으로 손꼽힌다. 하나투어의 ‘제우스’나 롯데 JTB가 선보인 ‘샤롯데 로열’ 등 럭셔리 콘셉트의 고가형 상품들도 실버계층이 주요 고객이 된다.
그렇다면 실버계층이 가장 싫어하는 여행지는 어디일까? 정답은 몰디브 등 휴양형 리조트에서 유유자적 모든 일정을 보내는 상품이다. 가이드 경험이 있는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실버 계층은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는 해외에 나왔다면 적극적으로 관광을 즐기는 것을 당연시하며 압도적인 자연경관이나 존재감이 강렬한 유적 등이 있는 목적지를 선호하는 편이다”라고 어르신들의 여행 취향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휴식이 필요한 일정이라면 온천과 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일본이 선호된다”라고 덧붙였다.
실버계층은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여행도 관심이 많다. 하나투어가 선보인 고품격 국내일주상품 ‘내나라여행’은 대한민국의 숨어 있는 멋과 맛을 느껴보는 상품으로, 60대 이상의 여행객 및 해외교포, 외국인 관광객의 선택도 증가하고 있다.
내나라여행상품은 대표적으로 ‘서부권’과 ‘동부권’ 그리고 이 두 상품을 결합한 ‘한국 일주’ 등으로 나뉘는데, 각 지역의 별미를 맛보고 초특급 호텔에 숙박하는 등 입소문을 통해 여행 수요가 많이 증가하고 있다.
한편 시니어 여행상품의 정착을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다. 비슷한 연령대의 고객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쉽고 여행 일정도 여유롭게 진행되지만 무엇보다 가이드의 역량과 고연령대 여행객을 위한 맞춤 서비스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고객들의 연령대를 감안하면 의료 지원 부문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모를 긴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현지 병원 혹은 호텔, 리조트와의 제휴를 통해 24시간 의료 지원 서비스가 이뤄진다면 ‘할배들의 여행’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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