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이 1일에 이어 3,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바그너의 마지막 음악극 ‘파르지팔’이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자주 들어본 제목은 아니죠? 이렇게 소개해볼까 합니다. “‘결혼행진곡’이 나오는 ‘로엔그린’의 프리퀄(prequel)이 ‘파르지팔’이다.”
프리퀄이라, 영화팬들에게는 낯익은 용어죠. 사전적 설명은 이렇습니다. ‘전편보다 시간상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으로, 본편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설명하는 기능을 한다. 전편이 흥행해서 후편을 만들고자 할 때 만들기도 한다.’ 이 설명을 적용하자면 단언컨대 ‘파르지팔’은 완벽한 프리퀄입니다.
바그너는 ‘로엔그린’을 1850년에, ‘파르지팔’을 32년 뒤인 1882년에 발표했습니다. ‘로엔그린’의 주인공인 로엔그린은 성배(聖杯·holy grail)의 기사입니다. 그는 ‘나의 아버지가 성배의 왕 파르지팔이다’라고 노래하지만 성배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죠. 30여 년이 흐른 뒤 바그너는 로엔그린 출생 이전의 이야기를 ‘파르지팔’에서 들려주면서 자신이 유럽 설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배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 넣었습니다. ‘흥행한 전편의 후편’이라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프리퀄 개념에 들어맞습니다.
성배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그의 피를 받은 잔을 말합니다만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전설 속의 얘기입니다. 성배를 둘러싼 모험과 미스터리를 다룬 영화로는 ‘몬티 파이선과 성배’ ‘엑스칼리버’ ‘인디애나 존스-최후의 성전’ ‘다빈치 코드’가 있습니다.
오페라 역사 속의 프리퀄을 들자면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과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피가로…’는 1786년, ‘세비야…’는 1816년 발표됐지만 ‘세비야…’가 ‘피가로…’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원작자인 희곡작가 보마르셰는 ‘세비야…’를 먼저 썼지만 오페라 발표 순서만 보면 ‘세비야…’가 프리퀄이 된 셈이죠.
‘피가로…’ ‘세비야…’에 이어지는 속편, 즉 ‘시퀄(sequel)’도 있습니다. 보마르셰가 두 작품에 이어 쓴 ‘죄 있는 어머니’입니다. 이 희곡은 1966년에야 프랑스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가 오페라로 만들었습니다.
다시 ‘파르지팔’로 돌아가겠습니다. 이 작품엔 중년 이상 세대에 친숙한 선율이 나옵니다. 1막 전주곡의 금관 선율이 1970년대 뉴스 시그널로 사용됐거든요. 궁금한가요? QR코드나 다음 인터넷 주소를 통해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blog.daum.net/classicgam/28
1일 오후 4시 시작된 공연은 두 차례의 인터미션을 지나 오후 9시 20분에야 끝났다. 국립오페라단이 한국 초연한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은 주역 가수들의 빼어난 기량으로 빛났다. 단출한 무대와 어수선한 의상은 다소 아쉽지만 국내 오페라의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이 장대한 오페라를 ‘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서정원(한국바그너협회 실행위원) ★★★★★
필리프 아를로 연출은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무대를 경사 거울을 사용해 독특한 시각 경험을 안겨줬다. 전반적으로 아주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모범적인 무대였다. 조명 디자이너 출신답게 적절하고 다양한 조명이 인상적이었다. 지휘자 로타어 차그로세크는 장중하기보다는 깔끔한 연주를 들려줬다.
○ 김원철(음악칼럼니스트) ★★★★
외국 가수들이 내한공연에서 몸을 사리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파르지팔 출연진은 하나같이 최선을 다했다. 쿤드리 역의 메조소프라노 이본 네프가 발군이었다.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기대 이상으로 잘하기는 했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 송현민(음악칼럼니스트) ★★★★
오케스트라가 잘 받쳐 줄 수 있을지 우려가 많았지만 초반부터 분위기를 잘 잡았다. 다른 파르지팔 프로덕션들이 주로 선악(善惡)을 백과 흑으로 표현한 반면 이번 공연은 파란색을 주 색조로 잡아 독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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