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제목 ‘별들의 무덤’ 재수없다고 퇴짜 급히 회의 끝에 ‘별들의 고향’으로 수정 주인공 경아 이름도 초고에는 ‘노승혜’ 경아 모습은 당시 내 아내 그대로 묘사
70년대 문학의 아이콘 ‘별들이 고향’이 출간 40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별들의 고향’은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문학의 시작이자 1970년대 감수성의 혁명을 몰고 온 한국문학의 금자탑이다. 지난 9월25일 별들의 고향으로 떠난 최인호는 ‘별들의 고향’ 재출간을 앞두고 그의 인간적 체취가 진하게 묻어나는 ‘작가의 말’을 재출간본 말미에 실었다. 그곳엔 최인호의 문학열정과 패기만만했던 스무 살 청년의 삶 그리고 좌충우돌 일화들이 빼곡하다. 최인호가 ‘작가의 말’에서 밝힌 이야기를 토대로 그와 가상 인터뷰를 했다.
- 최 선생님은 ‘별들의 고향’을 포함해 초기 작품에선 작가의 말을 쓰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왜 그랬나.
“당시엔 작가가 자기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언급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별들의 고향’은 나를 유명하게 만들겠지만 이 소설의 그림자는 작가로서 내 인생에 오랜 동안 부정적인 그림자로 드리울 것으로 예견했다. 난 이 소설에 대한 작가의 말은 먼 훗날 허심탄회하고 자유롭게 작가의 말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됐을 때 처녀 출판된 ‘별들의 고향’ 서문을 그때 쓰겠다고 결심했었다. 이제는 무엇에 거리낄 것이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해도 좋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뒤늦은 지각생의 서문을 썼다.”
“황순원 박영준 두 선생님께서 신문사 문화부장에게 추천했다고 들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주인공 이름이 기억되는 문학작품이 거의 없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는 소냐가 나오고 톨스토이의 ‘부활’에서는 카츄사가 나온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인 여자 이름을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하도록 하는 소설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여인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누구나의 가슴속에 한번쯤 깃들었다 스러지는 그런 여인, 평범하기 때문에 누구나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여인의 얘기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 ‘별들의 고향’을 집필하는데 어떤 원칙들이 있었나.
“두 개의 원칙이 있었다. 하나는 소설을 읽는 재미를 하루하루의 신문을 통해서 철저히 느끼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장이 새롭고 독특해야 하며 스토리의 전개를 통해서 연재소설의 호흡을 조절할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이름이 기억되어 마치 자신의 첫사랑이나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게 기억되어질 것을 염두에 두었다. 또 한 가지 소설 중간 중간에 현대 시인들의 시를 삽입해 보자는 것이 내 개인적인 의도였다.”
- ‘별들의 고향’ 주인공의 이름이 처음엔 경아가 아니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미리 쓴 줄거리에는 주인공의 이름은 ‘노승혜’였다. 경아로 바뀐 것은 연재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내가 당시 가수 이장희 군에게 써주었던 토크 송의 가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제 연인의 이름은 경아였습니다. 나는 경아가 아이스크림 먹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뒷날 이장희 군은 이 이야기를 기반으로 ‘겨울이야기’라는 제목의 레코드를 냈고 큰 히트를 쳤다. 그래서 노승혜라는 이름을 버리고 경아라는 이름을 택했다. 사실 경아라는 이름이 더 귀엽고 평범하며 보편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 제목도 바뀌었다는 말도 있다. 맞나.
“내가 고심 끝에 작명한 원래 이름은 ‘별들의 무덤’이었다. 이 제목을 신문사에 가지고 갔더니 신문사 간부가 “조간신문에 재수없게 무덤이라니…. 다른 이름으로 고쳐봅시다”라며 곱잖게 봤다. 즉석에서 회의를 통해 ‘별들의 고향’으로 결정했다.”
- 주인공 경아의 실제 모델은 누구인가.
“소설 속 경아는 키 155cm, 가슴둘레 78cm, 몸무게 44kg으로 묘사돼 있다. 어깨 뒤에 큰 점이 하나 있고 하이힐을 신고 다닌다. 연재 도중 많은 사람들이 내게 실제로 경아와 같은 여인과 연애를 해본 적이 있냐고 물은 적이 많았다. 이제와 고백하면 경아의 모습은 당시 내 아내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별들의 고향’은 당시 상,하권 합쳐 100만 권 가량 팔렸다. 인세도 꽤 많았을 텐데.
“맞다. 100권 가량 팔린 것으로 기억된다. 인세로 당시 황무지였던 서울 강남의 신사동 땅을 사서 빨간 지붕의 양옥집을 지었다. 당시 신문 사회면에 ‘최인호 강남에 호화주택을 짓다’하며 대서특필되기도 했었다.”
- 40년 만에 주인공 ‘경아’와 마주했다. 경아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젊은 시절 내가 창조했던 경아는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소원대로 청산가는 나비가 되어 훨훨훨 나래를 치면서 날아가 버린 것이다. 경아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처럼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내 젊은 날의 머나먼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내 앞에 선 누님 같은 꽃이 되어 버렸다. 한때는 내 자신이었고 내 분신이었고 내 애인이었다. 경아여 이제야말로 헤어질 시간. 잘 가시오. 그리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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