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먹고,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는가?
미셸 레이몽 지음/이희정 옮김/259쪽·1만3500원/계단
19세기 중반 프랑스인이 1년간 먹는 설탕량은 약 2kg이었다. 그러다 1920년대 19kg으로 9.5배로 늘었고 오늘날에는 37kg까지 급증했다. 현대인의 DNA가 신석기 시대 크로마뇽인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수만 년간 우리 몸을 적셔 줬던 포도당과 과당(둘이 결합한 게 설탕)이 단비 수준이었다면 오늘날의 그것은 홍수에 가깝다.
여기까지 읽으면 ‘그러니까 비만과 당뇨환자가 많지…’라고 넘어가기 쉽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 시력과 피부에까지 미쳤다는 설명은 새롭다. 북극 이누이트족은 근시율이 2%에 불과했는데 설탕이 들어간 서양식 식사를 하면서 20년 뒤 그 비율이 60%로 늘었다. 프랑스에서 여드름이라는 단어는 설탕 소나기를 맞은 19세기 초가 되어서야 등장했다. 설탕에 오염되지 않은 파푸아뉴기니 인근 키타바 섬 원주민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의료 검진에서도 여드름 증세가 발견되지 않았다. 불과 100년 안팎의 식습관 변화가 현대인의 몸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 줬음을 보여 주는 방증이다.
이 책은 이처럼 진화생물학의 지식을 인류학적 지식과 접목해 우리 일상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알기 쉽게 풀어 준다.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길러진다’는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은 착오다. 남자가 내비게이션 말을 잘 안 듣고, 여자가 주차를 잘 못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그렇게 키워져서가 아니라 유전적으로 그렇게 세팅돼서다.
반면 사춘기 청소년의 반항은 호르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산물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어른들과 어울려 노동하던 청소년들이 현대에 와서 아동노동이 금지되고 의무교육이 확산돼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커진 데다 대중문화로 인해 부모세대와의 단절이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연구실장인 저자는 문제의 근접 원인만 찾는 현미경의 시각보다 인류진화사를 되돌아보는 망원경의 시각을 갖출 것을 주문한다. 여기서 도출된 지혜는 우리의 통념을 배신한다. 비타민 같은 항산화물질의 효능을 믿지 말고, 열이 난다고 바로 해열제 먹이지 말고, 임신부에게 철분을 억지로 보충하지 말고, 아이들을 일상적 세균에 적당히 노출시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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