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자각몽… 현실이 꿈인가, 꿈이 현실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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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6일 일요일 맑음. 꿈의 성층권.
#77 Dream Theater ‘The Enemy Inside’ (2013년)

5인조 록 밴드 드림시어터. 마이크 맨지니(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드러밍은 벌새의 날갯짓 같다.
5인조 록 밴드 드림시어터. 마이크 맨지니(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드러밍은 벌새의 날갯짓 같다.
지각몽(遲刻夢)을 아는가. 난 살면서 몇 번, 그것 때문에 지각했다. 시계의 알람 벨을 끄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씻고 차에 오르는 순간 다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말이다. 깨어난 건 꿈이었던 거다. 시계를 보면 이미 일어났어야 할 시간에서 30분이 훌쩍 흘러가 있다. 찾아보니 ‘폴스 어웨이크닝(false awakening·잘못된 자각)’이라는 용어가 내 증상을 그럭저럭 설명해 준다.

미국의 5인조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드림시어터가 최근 낸 12집 ‘드림시어터’의 서곡 제목을 바로 ‘잘못된 자각 모음곡(False Awakening Suite)’이라 지었다. 며칠 전 인터넷상에선 자각몽(自覺夢)이 한바탕 화제가 됐다. 꿈속에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깨닫는 꿈 말이다. 나도 몇 번인가 지각몽 아닌 자각몽을 꾼 적이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현실이 아니고 꿈이란 걸 깨닫는 순간의 느낌은 마치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문득 어깻죽지에서 날개가 돋친 것처럼 아찔하다. 물론 그 날개는 돋치자마자 쾌속으로 퇴화한다.

밴드 드림시어터는 꿈에 관해 25년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데뷔 앨범 제목부터 ‘꿈과 낮이 결합할 때’다. 3집은 ‘깨어 있는’이며, 5집 ‘메트로폴리스 2부: 어떤 기억에서 온 장면들’은 최면 치료 과정에서 전생을 경험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12곡, 2막 9장으로 이뤄진 77분의 음악에 소설처럼 펼쳐 냈다.

멤버 전원의 초인적인 연주력이 8분의 17박을 포함한 변화무쌍한 변칙 박자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지적인 헤비메탈을 만들어 내는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소인(小人)이 돼 꿈을 가동하는 태엽장치 안으로 잠입하듯 아찔해진다. 새 앨범에는 10초에 드럼을 200회 넘게 연타해 ‘세계 최고속 드러머’ 인증까지 받은 괴물 마이크 맨지니가 2010년 새로 가입한 뒤 처음 작곡 과정부터 참여했다. 맨지니는 시어터 합류 전 기타리스트 스티브 바이의 밴드에서 오래 연주했다. 바이는 자신의 ‘꿈 일기’를 작곡에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짧은 연주곡인 ‘잘못된 자각 모음곡’을 잇는 노래 ‘내부의 적’이 그리는 꿈은 현실과 전장의 경험이 겹쳐지는 퇴역 군인의 악몽이다.

장대한 국군의 날 퍼레이드를 보면서 궁금해졌다. 총칼을 보며 자부심을 느끼는 대신 공포에 떠는 퇴역 군인은 우리나라엔 없을까. 나만 혼자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이건 누구의 자각몽일까, 지각몽일까. 그렇담, 내일도 지각인 건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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