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 문화재감정관실에서 박도화(오른쪽), 김현권 감정위원이 화상을 이용하여 김포공항과 속초항 감정위원들과 함께 의뢰가 들어온 도자기를 감정하고 있다. 인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전통적인 비취색이 은은한 데다 두께가 얇고 예리합니다. 11세기 초 순청자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반면 백자는 굽(도자기 바닥 부분)도 이상하고 흙이 어색하게 묻어있네요.”
“맞습니다. 입구가 깨진 것도 옛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훼손한 게 역력합니다.”
2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
도떼기시장이 이럴까. 출국장 3층은 왁자지껄 혼을 쏙 빼놓았다. 보따리 짐을 가득 진 중국인들의 목청 데시벨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구석에 자리한 서너 평 사무실이 바깥 고성에 흔들리는 착각도 들었다.
사무실 입구에 달린 문패는 ‘문화재감정관실’. 이런 환경에서 감정이란 게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박도화(57) 김현권(45) 감정위원은 일상인 듯 무덤덤했다. 오히려 컴퓨터 모니터에 뜬 타 지역 감정위원들의 대화를 하나라도 놓칠까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무엇이 진짜 유물일까. 일반인들은 구별이 쉽지 않다. 살짝 깨진 흔적이 있는 왼쪽 백자가 더 진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백자 항아리는 진짜같이 보이려고 일부러 상처를 내놓은 것. 오른쪽 사발이 11세기에 만든 고려청자다.이날 김포공항과 속초항 여객터미널 감정위원을 연결해 화상 감정까지 벌인 대상은 청자 완(완·사발)과 백자 호(壺·항아리). 한국 여행객이 해외 반출 심사를 의뢰한 유물로 언뜻 보기엔 옛 정취가 가득했다. 하지만 한참 동안 격론을 벌인 끝에 청자는 진짜, 백자는 가짜로 판정 내렸다. 백자는 상관없지만, 청자는 내보낼 수 없다는 결론이다.
“고려청자라고 다 보물급은 아닙니다. 이 정도면 시중에서 몇십만 원에 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가격을 떠나 우리 문화재를 함부로 해외로 내보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엄정한 절차를 거치도록 이중삼중 방어벽을 치는 겁니다.”(박 위원)
국내에 문화재감정관실이 생긴 것은 1968년. 공항과 항구를 통한 문화재 밀반출을 막고자 현재 전국에 19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본 루트가 중요했지만 요즘은 중국 쪽이 가장 신경 쓰인다. 드나드는 사람이 늘다 보니 반출 시도가 부쩍 늘었다. 인천항의 경우 하루 유동인구가 평균 3000명인데, 비상근 3명을 포함해 6명이 모든 걸 관리한다. 최근 중국에서 오는 크루즈 선박이 늘어 밤샘 야근도 부지기수다.
요즘 문화재 감정엔 첨단과학이 많이 쓰인다. 엑스레이 보안검색에서 유물은 상당수가 걸러진다. 꽁꽁 숨겨도 문화재에 따라 색깔별로 드러난다. 도자기는 주로 녹색, 금속유물은 청색 계열로 표시된다. 회화나 고서적은 주황색 톤인데 현대서적과 밀도가 달라 확연히 구분된다. 앞서 실시했던 화상 감정도 2006년 도입돼 오차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감정위원들은 시대가 흐를수록 ‘육안 감정’이 더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전체 감정관실을 총괄하는 최태희 실장(61)은 “기계적으로 과학적 증거에 의존하면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이다.
“재료가 오래된 것은 진품이란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요즘 짝퉁 제조업자들 기술이 얼마나 정교한데요. 중국에선 수천 년 된 폐사지 돌을 조각하거나 옛날 종이와 먹을 구해 그림을 모사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도자기 감정에는 굽이 제일 중요한데, 출토됐다 버려진 굽 파편만 구해다 위는 새로 만들어 붙인 물건도 봤어요.”
여기서 궁금증 하나. 도자기는 왜 굽을 살피는 게 중요할까. 시대와 제조 장소, 자기 형태에 따라 굽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물관 전시를 관람하거나 도록 사진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도자기 바닥을 보여주지는 않으니까. 직접 유물을 보고 연구한 학자들만 구별이 가능하다. 굽 파편을 구해다 붙여도 가짜인 게 들통 나는 것도 이런 연유다.
재밌는 것은 문화재 판정을 대하는 태도가 입출국 때 다르다는 점이다. 나갈 때야 진품이면 반출이 안 되니 진품 판정을 꺼리는 게 당연지사. 그런데 들어올 땐 어떻게든 진짜라는 얘길 듣고 싶어 한다. 반입 때 100년이 넘은 유물로 판정받아야 관세를 물지 않기 때문이다. “1억 원이 넘는 중국 고대 유물”이라고 큰소리 떵떵 치다가 가짜로 밝혀져 수천만 원의 세금을 문 여행객도 있다.
사실 올해 초 일본 쓰시마 섬 도난 불상이 부산항에서 ‘무사통과’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절도범들이 들여오며 복제품으로 신고했으니 감정관실이 나설 근거가 없었던 것. 하지만 논란이 일자 비난은 이들에게 쏟아졌다. 감정위원들은 “대부분 박사학위를 지닌 학자들이지만 모두 계약직 신분”이라며 “자긍심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무책임한 비난은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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