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 ‘보수-진보’ 주제 학술대회… 송호근 교수 소모적 갈등정치 비판
지나친 배타성… 직장인 취급… 兩정권 모두 진정한 참여의 문 봉쇄
타협없는 이념투쟁 골몰하는 한 한국정치의 고비용 구조 극복 못해
“이념 투쟁은 어느 나라에서나 발생하는 보편적 정치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념 투쟁이 계급 타협이나 정파 간 타협으로 전환되지 않아 고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만약 이념 투쟁의 타협 방식을 창안했다면 한국은 훨씬 나은 민주주의가 되었을 것이다.”(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에서 진보 대 보수, 혹은 좌파 대 우파의 싸움은 사회 발전을 위한 생산적 갈등 관계를 넘어 사회에 피로를 누적시키는 소모전이 됐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보수·진보 이념의 역사와 문제점을 논하고 한국사회의 발전 방향을 찾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한림대 한림과학원이 11일 강원 춘천시 한림대 국제회의실에서 ‘보수·진보의 개념과 역사적 전개’를 주제로 여는 제5회 일송학술대회다.
미리 입수한 발표문에 따르면 송호근 교수는 ‘한국정치는 왜 이념 투쟁으로 얼룩지는가’라는 제목으로 “성장, 분배, 대북, 대미 관계를 제외하고 한국정치에서 이념 투쟁을 촉발하는 요인들을 둘러싼 진보·보수 진영의 이념적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즉 타협의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정치에서 정치 세력화의 주된 방식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밑으로부터의 ‘참여’가 아닌 위로부터의 ‘동원’이었다. 송 교수는 “노무현 정권은 시민운동의 전위부대가 정권에 배타적으로 참여한 이른바 ‘행동가 민주주의’, 이명박 정권은 시민참여의 문을 닫아 버리고 시민을 직장인처럼 인지했던 이른바 ‘종업원 민주주의’였다”면서 “시민 참여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생명이라면 한국 민주주의는 쇠퇴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민의 동의와 참여를 존중하는 ‘시민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과 규범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발표문 ‘한국에서 보수·진보의 개념과 한계, 그리고 미래’를 통해 “한국에서 보수·진보라는 명칭은 우파·좌파의 이념적 명칭 대신 잘못 붙여진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좌파가 6·25전쟁 이후 ‘반공’을 국시로 삼은 권위주의 정권 아래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보·보수라는 명칭을 사용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려 한 것이 관행적으로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또 “진보는 민주화만을, 보수는 반공만을 외치고 있으니 ‘꼴통들’로 불릴 수밖에 없다”며 “보수와 진보는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된 현실을 직시하고, ‘경쟁적 동반자’ 관계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념으로서 보수가 진보의 정치적 대척 개념으로 보편화된 것은 1980년대부터라는 주장도 나왔다. 권용립 경성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발표문 ‘한국 보수 개념의 역사와 특징’에서 “보수를 진보의 정치적 대척 개념으로 확립시킨 ‘변혁’은 1980년의 ‘광주’,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 투쟁, 1990년대 초의 냉전 종식과 한반도 정세 변화였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쟁이 있어야 평화라는 개념이 생기듯 총체적 도전과 변혁에 직면해야 ‘보수’의 개념이 이해된다”며 “개념이든 세력이든 보수는 진보와의 대결과 공존을 통해서만 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발표문 ‘한국의 보수와 진보,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서 보수와 진보의 혁신을 위해서는 보수·진보 정당이 자신의 핵심 지지 세력과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보수 정당은 재계의 요구에 대해, 진보 정당은 노동·시민단체의 요구에 대해 ‘노(No)’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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