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영조 때인 1750년 화순옹주가 있었다. 그는 남편 김한신이 요절하자 따라 죽기로 하고 곡기를 끊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영조가 친히 그 집을 찾아 미음을 권했으나 옹주의 결심을 돌리지 못했다. 곡기를 끊은 지 14일 만에 숨을 거둔 그를 정조는 여성의 도덕성의 극치라며 극찬했다.
1922년에 강향란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기생 출신인 그는 애인의 도움으로 뜻을 품고 공부하다 실연하자 깊은 좌절에 빠졌다. 그의 선택은 단발이었다. 짧은 머리로 남자 행세를 하던 그는 이내 여성임이 발각됐다. 당시 남성들은 전통을 파괴하고 겉멋에 휘둘려 근대화를 추종하는 몰지각한 행위라며 그에게 비난을 쏟아 부었다.
책은 단군신화의 웅녀부터 일본군 위안부, ‘양공주’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의 여성상을 연대기 순으로 훑는다. 우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세 명의 여왕을 배출한 국가인 신라, 명문가 딸이지만 25세에 시골 향리 아들과 혼인한 고려 부인 염경애의 사례를 들며 시대별 여성의 위상과 그에 맞선 도전의 역사를 살펴본다. 상명대의 여성사 강의 교재용으로 만든 것을 12강으로 구성된 책 하나로 엮었다.
다양한 사례가 등장하니 옛날이야기 읽듯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만 역사 교재라서 문체가 딱딱하긴 하다. 책에는 파격적 해석도 적잖다. 제6강 ‘열녀: 죽음인가, 죽임인가?’에서 화순옹주의 사례를 들어 필자는 주장한다. 열녀의 양산을 주도한 것은, 더이상 재혼만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감지한 여성들이 최고의 덕목을 실현한 인격체로 승화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열녀로서의 자결을 택했다는 것이다.
각 강의가 끝나면 ‘사료 더 읽기’를 제공하고 ‘더 읽을거리’를 붙였다. 역사나 여성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독자나 학자, 학생이라면 몇 가지 화두를 건질 만한 책이다. 침대 머리맡에서 읽을 재밌는 역사서를 찾는 독자들에게는 지나치게 밋밋하고 건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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