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요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 그의 동시 800여 편은 홍난파 윤극영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 ‘퐁당퐁당’ ‘짝짜꿍’ ‘어린이날 노래’ 등의 동요로 만들어졌고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런 윤석중에겐, 어린이가 순수한 동심을 지킬 수 있게 해줬다는 찬사와 더불어 어린이의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낙천주의만을 노래했다는 비판도 따라다녔다.
그런데 윤석중은 실제로 적극적인 현실의식을 지닌 인물이었으며 어린이를 순진무구한 천사처럼 보는 ‘동심주의’ 프레임으로만 평가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계간 ‘창비어린이’ 편집위원장인 김제곤 아동문학평론가는 최근 출간된 ‘윤석중 연구’(청동거울)에서 윤석중이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현실참여 성향을 띠었다고 분석했다.
그의 아버지 윤덕병은 1925년 조선공산당 결성에 가담했다가 3년 넘게 옥고를 치렀으며 6·25전쟁 중 우익의 손에 살해됐다. 윤석중은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새장가간 아버지와 떨어져 외할머니 손에 자랐지만 아버지를 존경했다. 김 평론가는 “우국적 인사들 틈에서 나고 자라며 민족의식을 키웠던 윤석중의 내면에는 ‘부재하는 아버지’(식민지 조국)를 대신해 ‘온전한 아버지’(완성된 국가)를 갈망하는 부성콤플렉스가 작동하고 있었다”면서 “그는 근대국가 완성에 대한 열망을 동요 형식으로 표출한 국민시인이며 그가 평생 동안 추구해온 동요문학은 일종의 국민시가적 성격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김 평론가는 ‘윤석중이 계급주의문학에 맞서 순수문학을 지키려 했다’는 통념도 반박했다. 윤석중이 10대였던 1920년대 중반부터 소년문예단체 ‘기쁨사’를 조직해 활동했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여파로 동맹휴학을 결의했다가 실패하자 양정고보를 자퇴하며 ‘중외일보’에 ‘자퇴생의 수기’를 발표할 정도로 적극적인 현실의식을 지녔다는 것. 김 평론가는 “광복까지만 해도 그는 단순한 우파가 아니라 좌우에 모두 선을 대고 활발한 문단활동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또 “윤석중은 기존에 우리 아동문학이 간과했던 어린이상, 즉 명랑성과 공상성, 유년지향, 도시적 감각을 발견하고 그것을 작품 속에 끊임없이 구현하고자 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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