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석 소극장 맨 앞줄에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 셋이 앉아있었다. 창작극 초연 첫날이어서인지 만석은 아니었다. 뒤쪽으로 자리를 옮길까 말까 연신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그냥 눌러앉은 그 학생들은 공연시간 100분 내내 진땀을 뺐을지 모른다.
무대는 영세 봉제공장이 빼곡히 늘어선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반지하 단칸방이다. 주인공 연주(이혜원)는 친하게 지내던 언니의 자살로 남겨진 갓난아기를 대신 돌본다. 아기 할아버지 동식(김문식)은 그런 연주를 딸처럼 살갑게 대한다. 동식의 친구 재광(김왕근), 연주의 배다른 오빠 현식(박지호)도 가난하지만 얼핏 정겨워 보이는 일상을 그들과 함께 나눈다.
9시 뉴스가 시작하기 전 수없이 반복해서 봤던 ‘고단하지만 따뜻한 서민들의 생활 드라마’가 전개될까. 아파트 경비원 동료인 동식의 집에 허물없이 드나들던 재광이 문득 연주의 얇은 흰색 셔츠와 치마를 조금씩 힐끔거리기 시작한다. ‘잘못 봤나. 유머인가….’ 그때부터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착한 TV 드라마는 말짱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듯, 지독하게 헤집는다.
스토리는 신파다. 불치병과 죽음, 희생과 새 출발이 맞물리는 결말은 신선한 느낌이 떨어진다. 그러나 캐릭터와 이야기에서 전해지는 은근한 힘이 만만찮다. 박찬규 작가는 “서울의 ‘마지막 공간’이라 할 만한 이 동네의 좁은 골목길 속에서 우리가 지워버리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눈 돌릴 곳을 찾게 만드는 연주의 허술한 옷매무새는 그의 허술한 삶을 대변한다. 그런 모양새의 삶은 대개,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에게 허술한 사람으로 취급받아 잔인하게 능욕당하기 마련인 걸까. 교복을 입은 세 명의 맨 앞줄 관객이 부디 건강한 방향으로 이야기의 충격을 소화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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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 연출. 정의순 출연. 20일까지 서울 대학로 정보소극장. 2만 원. 02-889-3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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