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 대흥사의 대웅전에 모셔진 본존 삼세불상(三世佛像·석가불 약사불 아미타불)에서 최근 국보급 가치를 지닌 복장품(腹藏品·불상 안에 넣어두는 성물) 수백 점이 발견됐다. 게다가 함께 나온 불상조성기(佛像造成記)에서 불상의 제작 시기가 광해군 4년(1612년)이며, 제작자가 17세기 불상 조각승으로 명성이 높았던 태전(太顚) 선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15일 “올해 4월 대흥사 삼세불상의 개금불사(改金佛事·불상에 다시 금칠을 하며 치르는 의식)를 진행하며 불상 3점 안에서 후령통(候鈴筒·복장품을 넣는 통)들을 찾았다”고 밝혔다. 대흥사는 서산대사 휴정(1520∼1604)의 의발을 전수한 사찰로 유명하다. 그간 대흥사 삼세불상은 17세기 특유의 우아한 세련미가 넘쳐 일찍부터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정확한 유래가 밝혀지지 않아 애를 태웠다.
이번 복장품 조사에서 약사불과 아미타불에 들어있던 불상조성기에는 제작 시기는 물론 조성 배경이 구체적으로 담긴 기록이 나와 그간의 궁금증을 말끔하게 해결했다. 조성기에 따르면 원래 대흥사는 고려시대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나 정유재란 때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됐다. 전쟁이 끝난 뒤 이 지역 불교세력이 힘을 합쳐 사찰을 중창했는데, 삼세불상도 엇비슷한 시기인 1612년 8월 16일에 조성을 마무리했다.
조성기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태전 선사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태전 선사는 17세기 조선에서 활약한 불교예술 조각가로 당대에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태전 선사가 조성한 작품은 기록으로만 남았을 뿐 모두 실전돼 지금까지 그의 작품이 실물로 발견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대흥사 삼세불상 가운데 최소한 약사불과 아미타불은 태전 선사가 제작을 주도한 것으로 밝혀져 삼세불상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문 교수는 “대조각승 태전의 대흥사 불상은 조선시대 전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17세기 최고 걸작품”이라며 “불상의 명확한 시기가 밝혀진 만큼 국보로 지정되어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조성기와 함께 나온 복장품에서는 조선 전기에 간행된 불교 경전들도 대량으로 발견됐다. 6가지 불경(금강경, 보현행원품, 대불정수능엄신주, 아미타경, 법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 관세음보살예문)을 한 책으로 엮은 1445년판 ‘육경합부(六經合部)’를 비롯해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주석서인 ‘금강경 오가해’(1509년판), 원효 대사가 화엄경을 알기 쉽게 해석한 ‘화엄경소’(1557년판) 같은 귀중한 문화재가 다수 들어있었다. 복장품이 담겨 있던 후령통 역시 17세기 불교 공예품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긴 유물이다.
이번 발견은 한국미술사연구소가 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와 대흥사의 의뢰를 받아 올봄부터 조사 연구를 진행해 얻은 결과다. 문명대 교수는 다음 달 9일 한국미술사연구소 주관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해남 대흥사 대웅전 1612년 태전 작 삼세불상 연구’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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