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라인이 뚜렷하지 않은 무언극이나 행위예술을 ‘퍼포먼스’라고 부르는 사람이 간혹 있다. 잘못된 쓰임이다. 퍼포먼스는 공연을 뜻하는 영어 단어일 뿐이다. 12월 31일까지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서문 쪽 주차장 가설무대에서 공연하는 ‘푸에르자 부르타’는 제목 앞에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라는 설명을 달았다. 영어로 하면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선입견에 기댄 것 아닐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fuerza bruta’는 ‘완력’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10명의 남녀 출연진이 70분 동안 말없이 여러 몸동작을 보여 준다.
시작은 컨베이어 벨트 위를 달리는 정장 차림의 남자다. 1980년대 전자오락실의 슈퍼마리오처럼 이 남자는 쉼 없이 밀려오는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하거나 몸으로 부수며 통과한다. 밧줄에 매달려 벽면을 달리는 두 여자가 보이더니 출연자들이 느닷없이 관객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함께 어울려 춤추기를 부추긴다.
다음은 투명 합성수지 천장 속에서 반라 여성 4명이 벌이는 물놀이다. 팬티와 셔츠만 걸친 여인들이 물을 채운 말랑말랑한 투명 천장 속에 누워 몸을 비틀며 이리저리 미끄러진다. 천장이 천천히 관객 머리에 닿을 듯 내려오자 드문드문 배치된 안전요원들이 외친다. “손가락으로 찌르지 마세요!” 다시 컨베이어 벨트가 나온 뒤 관객에게 물을 뿌리며 춤추는 시간으로 공연이 끝난다.
절창이나 명연기로 환호를 이끌어 낼 의도는 당연히 없다. 들썩들썩한 분위기에서 야릇한 눈요기를 통해 관객을 흥분시키려 유도한다. 제작진은 “2005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초연 뒤 영국 런던과 에든버러,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뉴욕 등을 돌며 좋은 평가를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평가는 공연 자체에 대한 판단보다 공연장 시설에 좌우됐을 수 있다.
여러 제약이 있었겠지만 티켓 가격(9만9000∼22만 원)과 좁은 간이화장실 옆 천막 공연장은 어울리지 않는다. 머리를 텅 비우고 몸으로 노닐 수 있는 클럽은 이태원과 홍익대 앞에 넉넉하다. 이 공연이 그곳들 이상일까. 그렇다 하기 어렵다. 관객을 향해 물을 뿌리므로 고가의 가죽 옷이나 가방은 두고 가길 권한다. 02-542-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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