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나 또는 시실리엔. 각각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로 ‘시칠리아 여인’이란 뜻입니다. 음악에서는 이 말이 ‘시칠리아 춤곡’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점음표가 있는 느릿한 6박자 리듬에 어딘가 애조를 띤 단조 선율이 특징이죠. 시칠리아노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갑자기 시칠리아 ‘남자’가 돼 버리네요.
이 춤곡은 유난히 한국인들의 마음에 착 달라붙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느릿한 3박자 또는 6박자 장단에 쓸쓸함이 묻어나는 가락을 좋아했죠. 서구인들은 우리 음악 교과서를 보고는 “유난히 3박자 6박자 노래가 많네요” 한답니다. 2박자와 4박자 노래가 주류를 이루는 일본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고 합니다.
시칠리아나 또는 시실리엔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의 2악장, 레스피기 ‘옛 춤곡과 아리아’ 3번, 포레 극음악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나오는 곡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22일 서울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 테마콘서트 ‘회상’에는 19세기 초 드문 여성 작곡가였던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의 시실리엔이 등장합니다. 모두 가슴 선뜻한 애조를 전해 주는 곡입니다.
유럽 춤곡 가운데는 이 시칠리아나처럼 지명을 딴 것이 많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르가모에서 나온 ‘베르가마스크’, 폴란드 궁정의 대표 춤곡이었던 ‘폴로네이즈’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시칠리아나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네요. 제주민요 ‘오돌또기’의 후렴구(둥그래 당실)는 점음표가 있는 느릿한 6박자입니다. 서구식으로는 단조로 해석되는 음계도 갖고 있습니다. 시칠리아와 제주도가 반도 남단의 큰 섬이라는 점도 같네요. 하지만 정작 시칠리아나는 시칠리아에서 고유의 춤곡으로 취급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유럽 대륙으로 퍼져나간 뒤 정작 발생지에서는 잊혀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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