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대표작 ‘존재와 사건’(새물결·사진)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간됐다. 1988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지 25년만이다. 세계적 사상가가 먼저 한국에 당도한 다음에야 그 사상의 정수를 담은 대표작이 당도했다는 사실이 매우 역설적으로 다가선다. 바디우의 사상적 동지로 불리는 슬라보이 지제크였다면 “고양이가 왔다가 사라지고 난 뒤 고양이의 웃음만 뒤늦게 도달한 상황”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37개의 독립된 ‘성찰’로 구성된 ‘존재와 사건’은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겨냥했다. 문학적 시를 통해 존재의 구원을 찾은 하이데거에 맞서 칸토어의 집합론이라는 수학을 통해 보편적 진리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는 철학적 사유의 토대로 수학을 중시했던 데카르트적 전통에 선 것이면서 전통적 철학이 추구한 진리가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하다고 본 영미권 분석철학에 대한 직격탄이기도 했다.
바디우는 진리가 하나가 아니라 다수이며 철학 밖에서 철학과 독립적으로 일어난다고 밝혔다. 대신 예술 정치 과학 사랑이라는 외부의 네 영역에서 이뤄지는 사건을 통해 진리를 사유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사건이란 그때까지 지식체계의 패러다임을 붕괴시키는 예외적 사태의 전개를 말하며 이를 위해 주체의 실천적 투쟁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번역은 조형준 새물결 출판사 주간이 직접 맡았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방문연구원으로 체류 중인 조 주간은 “10여 년 전부터 번역을 추진해왔는데 여러 차례 무산돼 프랑스어판을 토대로 독일어판과 영어판까지 참조해 번역했다”고 밝혔다. 바디우의 독특한 개념설명을 위해 용어사전과 용어대조표도 실었다. 848쪽. 3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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