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남성의 짐 나눠지는 사회됐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1일 03시 00분


男, 혼자 죽는다: 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으로 신동아 논픽션 최우수상 6인
사망자의 93%인 77명이 남성… 실패와 무능함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변과 연락끊고 외롭게 최후 맞아… 망자 주변 찾아가면 문전박대 일쑤
그래도 발품 판 취재에 큰보람 느껴

제49회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오소영 이수진 노동우 성유진 최하은 씨(왼쪽부터). 이들은 “한국 사회가 남성들에게 지운 과도한 경제적 부담이 이들을 주변과의 관계를 끊게 만드는 무형의 사회적 압력”이라고 말했다. 최근 취업한 김형석 씨는 업무 관계로 인터뷰에 참석하지 못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제49회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오소영 이수진 노동우 성유진 최하은 씨(왼쪽부터). 이들은 “한국 사회가 남성들에게 지운 과도한 경제적 부담이 이들을 주변과의 관계를 끊게 만드는 무형의 사회적 압력”이라고 말했다. 최근 취업한 김형석 씨는 업무 관계로 인터뷰에 참석하지 못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하루 종일 발품을 팔고도 아무 소득이 없는 날이 허다했다. “왜 죽은 사람 얘기를 캐고 다니냐”며 망자(亡者)의 지인에게 문전박대도 셀 수 없이 받았다. ‘우리에게 죽은 자의 아픈 과거를 들출 권리가 있는 걸까’ 회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중독이라도 된 듯 멈출 수는 없었다.

제49회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 ‘男, 혼자 죽는다: 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이란 르포로 최우수상과 상금 1000만 원을 받게 된 수상자 6인(노동우 이수진 김형석 성유진 오소영 최하은)의 얘기다. 수상의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들을 16일 만났다. 최근 취업한 김형석 씨(광운대 영문학과 졸업)는 직장 일 때문에 동석하지 못했다.

언론사 입사시험을 함께 준비하던 이들이 무연고(無緣故) 사망자에 대한 르포를 쓰기로 한 것은 최하은 씨(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4년)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몇 년 전 외할머니의 동생분이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장에서 아내나 자녀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말년에는 누나인 외할머니와도 거의 연락 없이 지냈던 분이셨죠. 팀원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다들 ‘왜 그랬을까’ 하고 묻더군요. 그 의문이 우리를 이 취재로 이끌었습니다.”

주제는 정해졌지만 취재할 방법이 막막했다. 서울시 각 구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무연고 사망자 공고가 뜰 때마다 거기 적힌 사망자의 주소와 사망 장소를 무작정 찾아갔다. 오소영 씨(한양대 교육학과 졸업)는 “어렵게 찾아간 망자의 집이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때에는 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고 회상했다.

망자가 살았던 고시원이나 여관 주인, 슈퍼마켓이나 복덕방 주인을 설득해 얻은 퍼즐 조각 같은 단서를 기초로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무연고 사망자 83명의 삶을 복기해 낼 수 있었다. 서울시의 연간 무연고 사망자(평균 280명)의 30%에 해당하는 인원이었다.

그런데 이 기록에서 유달리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었다. 남성 사망자가 77명(92.8%)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홀몸노인의 경우 여성이 훨씬 많은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안 되는 수치였다. “무연고 사망 남성 중에는 명문대를 나와 공직생활을 한 분도, 수억 원을 기부한 사업가 출신도 있었어요. 남성의 비율이 높은 게 단지 우연이거나 게으른 천성, 고아 출신 같은 개인적 요인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다는 증거였죠.”(성유진 씨·연세대 사학과 졸업)

추가 취재와 토론을 거쳐 내린 결론은 한국 남성이 지고 있는 과도한 경제적 부담이라는 사회적 압력이 이들을 무연고자로 내몰고 있다는 것. 취재팀장을 맡은 노동우 씨(중앙대 경영학과 4년)는 “실직이나 사업실패 등으로 경제적 의무를 못하는 남자는 자존감도 떨어지고 자신의 존재가치도 쉽게 잃는 것 같다”며 “남에게 의존하는 남성을 무능력하게 보는 사회 분위기도 이들이 체면이라도 지키려고 주위 사람과 연락을 끊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수진 씨(성균관대 경제학과 4년)는 “이들을 위한 복지 정책도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남성들이 지고 있는 부담을 나눌 수 있는 실질적인 남성평등이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공모전에 낼 르포 작성까지 모두 마친 6월, 이들은 무연고 사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경기 파주시에 있는 서울시립 용미리 묘지를 찾아가 헌화했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내내 마음속엔 고인들의 이야기를 허락 없이 다루는 데 대한 죄책감이 컸습니다. 망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표하고 싶었습니다.”(노동우 씨)

이들의 르포와 심사평은 월간 신동아 11월호에서 만날 수 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르포#사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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