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함께 사는 개들의 이름(견우, 마음, 햇님, 빛나)에 조사를 붙이면 완성되는 문장입니다. 저는 자주 이 문장을 소곤소곤 되뇌곤 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빛나면 제 마음에도 빛이 들어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저는 사진을 찍으며 밥벌이를 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해맑고 착한 남편,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살아온 네 마리의 노견, 나를 사랑하듯 너를 사랑하겠다는 다짐으로 이름 지은 고양이 ‘나’와 봄에 입양해 ‘봄’이라 부르는 두 마리의 고양이, 그리고 저는 밥만 줄 뿐이고 스스로의 삶을 유유히 영위하는 세 마리의 길 고양이(오남이, 오순이, 오돌이)와 함께 소담한 마당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함께 산다는 표현이 키운다는 표현보다 정확할 겁니다. 꽤 자주 아이들이 저를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이 아이들에게서 받은 위로와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깨닫고 배운 것들에 대해 풀어내려 합니다. 마음을 나눈다는 것
장자(莊子)는 ‘외물(外物)’에서 ‘나는 어디서 말을 잊은 사람을 얻어서 그와 말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라고 기대 반, 한탄 반 했습니다. 장자는 찰떡같이 말해도 콩떡같이 알아듣는 말동무가 필요했나 봅니다. 사람과 동물은 분명 다르겠지만 저는 아이들의 눈을 보면 말을 잊고 뜻을 나누는 기이한 경험을 매일 합니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서로의 착각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저로서는 위의 착각에 몹시 행복해집니다. 어떤 방식으로 제 마음을 알아채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감정의 변화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습관화된 저의 몸짓을 보고 판단하는지, 특정한 호르몬이 방출되면 후각이 예민한 동물이 냄새를 맡고 알아채는지, 그것도 아니면 육감이라는 동물적 감각으로 모든 상황을 통찰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들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저를 바라봅니다. 시각적, 화학적 정보를 분석하거나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는 토대는 함께 있고 싶어 하고, 눈을 맞추고, 알고 싶어하는 그들의 마음입니다. 함께 있고 싶다는 것, 상대와 마주보고 싶다는 것, 상대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은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할 때 절실해지는 행동들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원해지는 사람들과 다르게 동물은 한결같습니다. 변함없고 헌신적인 사랑을 아무 대가 없이, 숨김없이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그런 행동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확고한 믿음을 갖게 합니다. 약간은 의뭉스럽고 내심이 많았던 제 성격은 10년이 넘는 세월을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변했습니다. 단순한 감정 표현과 순수한 애정 표현으로 상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 않는 것, 아이들이 제게 가르쳐 준 소중한 가치입니다.
배려한다는 것
12년 전의 어느 한때는 ‘말 못하는 동물이니까, 나는 주인이니까, 내가 키우니까’라고 착각하며 제 편의 위주로 아이들을 미숙하게 대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목뒤까지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창피한 시절입니다. 대소변을 못 가린다거나, 이갈이를 하거나 날카로운 발톱을 정리하느라 새 가구에 흠집을 낸다거나, 날아가는 새를 쫓아 혼자 내달린다거나 할 때는 어김없이 언성을 높이고 신문지를 돌돌 말아 겁을 주고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고백하자면, 그 당시에는 그들의 습성에 대해 무지했고 사람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했습니다. 반려동물이라는 개념보다는 애완동물의 개념으로 대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어떤 개념을 취하고 동물을 대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행동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반려는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입니다. 한자 뜻을 풀면 말 그대로 벗이 됩니다. 함께 생활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면서, 다시 말해 가장 가까운 벗이 되면서부터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아이들을 향한 배려도 깊어졌습니다. 결과와 현상만 보고 판단하고 행동한, 사려 깊지 못했던 시절을 반성하게 됐습니다.
반려동물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섣부르고 얄팍한 판단으로 얼마나 많은 오해들을 쌓아왔는지 생각하면서, 저는 조금씩 자랐습니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지요”라고 그들은 제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족하고 모자란 벗인 제게 이리도 관대한가 봅니다.
▼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매순간 그들 입장서 생각하세요 ▼ 다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 함께 있다는 것
십 년 안팎 이 세상을 사는 개나 고양이와 함께 살다 보면 압축된 생의 기승전결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든 행동이 어설프지만 귀여운 어린 시절, 철없는 망아지처럼 날뛰는 유년기, 열정적이고 활기찬 청년기, 뭘 좀 아는 장년기를 지나 나른해지고 노쇠해지는 노년기까지의 물리적 심리적 변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합니다. 압축된 만큼 변화도 급격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병들고 늙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입장은 마음 아프고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제 불안을 달래듯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알고, 현재에 만족하며, 현재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찾습니다.
요즘 ‘빛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상추밭에서 상추를 몰래 따 먹는 것입니다. 당나라 의학서 ‘천금식치’에 상추를 정력제로 기술했다는데, 빛나는 아마도 본능적으로 아는 모양입니다. 마치 늙어가는 것이 별일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 속엔 어딘지 모르게 범접할 수 없는 여유가 있습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거나, 피로가 쉬이 풀리지 않을 때를 제하곤 늙는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무한하게 살 것처럼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는 우리와는 참 많이 다릅니다. 아이들을 보면 지금 제가 잡고 놓지 않는 것이 진짜 원하는 것인지, 기쁨을 주는 것인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를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고통을 나누는 것, 그리고 이별한다는 것
반려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은 아마도 위의 두 가지일 겁니다. 2년 전, 그리고 지난 5월 두 마리의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메자이’와 ‘까미’입니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메자이는 “메자이, 이거 먹어”라며 외국인 이름을 부르듯해야 달려오는 멋지고 착한 개였습니다. 흔히 ‘첫정’이라고 합니다. 제가 엄마인 것처럼 키운 첫 번째 개입니다. ‘열 손가락 물면 안 아픈 손가락도 있더라’라는 생각이 들 만큼 편애했습니다. 아프기 시작한 후 일반병원 치료에 이어 종합병원 치료까지 받다가 “예후가 좋지 않고 고통이 심각해 편히 보내는 게 좋겠다”는 병원 측과 협의한 후 한 달 만에 안락사를 선택했습니다. 고통의 순간,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순간에 반려동물이 사람의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돌이켜보면 나 아닌 다른 대상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깊이 고민하고 가장 절실하게 궁금해했던 것 같습니다. 부자가 아닌 저는 치료비용에 대한 고민 역시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만 넘기면, 이번 수술만 잘되면…’ 하면서 불어난 병원비에 대한 부담이 컸습니다. 동시에 생명과 돈을 저울질하는 제 모습을 보며 자괴감을 느낀 시기이기도 합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산책을 좀 더 자주 갈걸, 조금 더 나긋이 부를걸, 조금 더 많이 쓰다듬고 손을 잡을걸, 맛있는 것 많이 줄걸, 사료를 좋은 걸 먹였으면 좀 더 살았을까, 목욕시키는 중 거품 묻힌 채 도망 다닌다고 소리 지르는 게 아니었는데…’ 등, 미안한 마음은 마치 자가증식이라도 하듯 불어났습니다. 가을 길 위로 낙엽이 내리듯, 후회의 바람이 불 때마다 켜켜이 쌓이는 미안함에 무거워진 마음은 발치까지 내려앉았습니다.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상황이 무기력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 유일하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이자, 메자이가 가장 원할 것 같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선택의 기준은 ‘후회의 가능성’입니다.
‘까미’는 ‘빛나’와 ‘견우’의 우발적인 합방으로 태어난, 제 손으로 받아낸, 저희 집에서 가장 어린 개입니다. 친부모와 떨어지지 않았고, 주인도 바뀐 적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막내니까 제일 오랫동안 함께 살 거라는 근거 없이 교만한 기대를 가진 주인 때문에, 뭐든 마지막 순서였습니다. 오는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때는 순서가 없는 법인데, 저는 ‘넌 혼자 사랑을 독차지할 날이 올 테니 나중에 듬뿍 사랑해 줄게’라며 뭐든 자주 미뤘습니다. 갑작스레 아프기 시작한 까미의 건강은 급격히 안 좋아졌고, 참 자주 나쁜 주인이었던 저는 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곁을 지켰습니다.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이름을 부르면 힘없이 꼬리를 흔들고 앞발을 건네는 까미를 보면서 미루고 주지 못한 많은 것이 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루느라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 애달파 마음이 저릿해졌습니다. 까미는 제가 해외 출장을 떠나기 며칠 전, 제 무릎 위에서 기지개를 켜듯 마지막 숨을 내쉬고 떠났습니다. 유난히 영특했던 이 아이는 마치 ‘때를 알고 있다’는 듯이, 때 모르고 언제나 미루기만 하던 어리석은 주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득하기도, 어젯일 같은 두 번의 이별을 겪으며 여러 가지를 깨달았지만 아직까지 어려운 점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느 선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반려동물은 무엇을 원할 것인지, 반려인의 욕심이 개입되지는 않았는지, 안락사는 옳은지, 안락사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시점은 언제인지 같은 수없이 많은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다시 겪을 때 어떤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반려동물이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명확히 말하자면,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함께 걷는다는 것
해외출장 때마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반려동물과 함께 버스나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원 평창에 다녀왔습니다. 대형견이 동반 입실할 수 있는 애견 펜션이 있다는 말을 듣고 견우, 햇님이와 함께 달려갔습니다. 우리나라 여건상 대형견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버스나 기차는 못 탔지만, 한껏 설레고 들뜬 표정으로 펜션에 도착했습니다.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의 붉게 물든 자연을 등에 업은 이 펜션의 이름은 북두칠성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그랑샤리오’입니다.
개와 동반 입수할 수 있는 커다란 야외 수영장, 넓은 운동장, 그릴이 놓인 야외 덱까지 모든 것이 기대 이상이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펜션 옆으로 뻗은 인적 없는 오솔길 산책로입니다. 평창엔 지금 가을이 한창입니다. 햇님이와 견우는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단풍잎을 쫓아 계곡물로 첨벙첨벙 들어가더니 흐르는 물에 몸을 맡깁니다. 계곡에서 나와서는 모든 스트레스를 쫓아내는 의식이라도 행하듯 온몸을 흔들어 화끈하게 물기를 털어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며 함께 걸을 시간이, 같은 바람을 느낄 시간이, 뭉실뭉실한 손을 잡고 마음 가득 충만함을 느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걱정되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내일이 되면 우리들은 오늘보다 더 행복한, 또 다른 최고의 순간을 맞이할 겁니다. 언젠가 손을 놓아야 할 때 후회할 일이 적도록,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저와 반려동물들은 오늘을 삽니다. 더 교감하고, 더 배려하고, 더 잘하고, 더 표현하고, 더 함께합니다. 언제나 간절했지만 이 글을 쓰며 더 간절해진 저의 큰 바람이 있습니다. 제 반려동물들의 마지막 순간에 인사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제 모습이 끝까지 책임을 다한 주인이기보다는 마지막까지 함께한, 사랑을 나눈, 서로 감사를 전하고 작별할 수 있는 벗의 모습이길 기대합니다.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랑스러운 반려동물과의 작별의 시간도 그런 모습이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이 ‘고마워’여서… 정말 고마워”라고 인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문유선 포토그래퍼 겸 에세이스트 장소협찬: 롯데JTB, 강원 평창 그랑샤리오 ▼ 함께 사는 ‘벗’과 여행하고 같이 잠자고 ▼ 반려동물과 입실할 수 있는 펜션
그랑샤리오 http://www.grandchariot.co.kr/
애견 두 마리까지 동반 입실이 가능하다. 애견 수영장, 운동장, 산책로, 애견 목욕실, 애견 드라이룸을 구비했다. 1박 10만 원부터. 2인 기준이며 최대 4인까지 입실이 가능하다. 인원 추가 시 1인 1만 원을 추가로 내면 된다. 햇살 객실과 구름 객실에는 애견용품(식기, 타월, 샴푸, 패드)이 구비되어 있다. 인근 관광지로는 봉평 허브나라,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 양떼목장, 이효석문학관 등이 있다.
가평 모닝펠리스 http://www.morningpalace.net/
아침 햇살, 아침 하늘 객실은 소형견 2마리까지 동반 입실이 가능하다. 1박 12만 원부터. 4인 기준이며 최대 6인까지 입실이 가능하다. 인원 추가 시 1만 원을 내면 된다. 인근 관광지로는 아침고요수목원, 남이섬, 명성산 등이 있다.
제주 상록수 숲속의 집 http://www.jejuview.com/
멀티룸 또는 시네마룸에 중형견 이하 애완견의 동반 입실이 가능하다. 1박 주중 16만 원이며 주말, 성수기, 극성수기에 따라 요금 차이가 있다. 4인 기준이며 최대 6인까지 입실이 가능하다. 인원 추가 시 성인 1인당 1만 원, 소인 5000원, 애완견 1마리당 1만 원의 추가요금이 발생한다. 인근 관광지로는 테디베어박물관, 퍼시픽랜드, 아프리카박물관, 여미지식물원, 중문관광단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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