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좋은 벗, 반려동물]험난한 훈련과정 이겨내고 탄생… 예쁘다고 만지진 마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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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맹인안내견 스토리

서울 관악구 은천동 실로암복지관에서 일하는 시각장애인 강시연 씨(28·여). 강 씨의 책상 밑에는 푹신한 쿠션이 깔려 있다. 강 씨와 24시간 함께 있는 안내견 ‘지미’의 쉼터다. 지미는 책상 밑에만 있지 않는다. 강 씨가 일에 집중할 때면 복지관 곳곳을 돌며 다른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강 씨가 지미와 친구가 된 건 2009년. 지미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을 분양하는 삼성화재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안내견

지미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강 씨가 안전하게 출퇴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지하철 6호선과 2호선을 갈아타야 하는 강 씨의 출퇴근길은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지미가 멈추면 강 씨도 멈춘다. 건널목이 나온 것이다. 지미가 멈추고 앞발을 아래쪽으로 향한 게 느껴지면 강 씨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내려가는 계단이 시작되는구나’ 인지한다. 처음 가는 길을 걸을 때도 강 씨는 든든하다. 지미에게 “건널목 찾아” “문 찾아” 등의 말을 하면 지미는 알아듣고 강 씨를 안내한다.

강 씨는 종종 지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지미는 훈련이 돼있기 때문에 강 씨가 아닌 타인이 부르는 소리에는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다. 다른 개들처럼 흥분하는 법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 지미를 만지거나 음식물을 갖다대면 지미의 시선과 몸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럴 때면 강 씨는 다른 사람이랑 부딪히기도 한다. 강 씨는 “귀여워해주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안전을 위해 안내견을 자극하는 행동은 삼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씨는 원래부터 시각장애인은 아니었다. 열여덟 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시력을 잃었다. 갑자기 캄캄해진 세상은 두려운 존재였다. 무엇보다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못하게 되자 자꾸 위축됐다. 용기를 내 캄캄한 세상에 적응하던 강 씨에게 그때 만난 지미는 세상과 연결하는 통로였다. 지미는 사랑의 끈도 됐다. 강 씨는 4년 전 같이 일하던 시각장애인 남자 동료를 통해 안내견에 대해 알게 됐다. 그 동료는 이미 안내견과 함께 생활 중이었다. 둘은 함께 안내견을 데리고 다니며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남자 동료의 안내견 ‘탄실이’와 지미도 친구가 됐다. 지미와 안내견이 맺어준 사랑은 내년 5월 결혼으로 열매를 맺는다.

혹독한 훈련 통해 탄생, 주변의 협조도 중요

지미와 같은 안내견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길러진다. 안내견학교는 1993년 문을 연 후 지금까지 총 150여 마리의 안내견을 무상으로 분양했다. 안내견이 되는 과정은 험난하다. 안내견 후보 중 실제로 안내견이 되는 개는 10마리 중 3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안내견학교에서 태어난 생후 7주된 강아지들은 일반가정에 1년간 위탁돼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퍼피 워킹(Puppy Walking)이라 불리는 이 과정 동안 강아지들은 정기적으로 테스트를 받는다. 온순한 성격을 갖기 위해 중성화 수술도 받는다.

퍼피 워킹을 마친 안내견 후보들은 6개월이 넘는 훈련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단계는 기질 평가. 이 시기는 안내견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흥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는지 파악하는 시기다. 많은 사람이 안내견의 역할에 대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과 걷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다.

두 번째는 시각장애인과 동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걷기훈련. 단순히 걷는 것만 아니라 주인과의 소통을 배우는 단계다. 처음에는 직선을 유지하며 걷는 연습을 한다. 둔턱이나 계단,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면 안전하게 멈추어 주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것도 이때 배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을 배운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와 식당, 엘리베이터 등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의 에티켓 훈련을 받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스스로 안전한 길을 선택하거나 때로는 불복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이때다.

안내견이 올바른 역할을 수행하려면 주위 사람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주변인의 지나친 관심은 금물이다. 길에서 안내견을 만나면 그냥 조용히 눈으로만 보는 게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을 위하는 길이다. 버스정류장이나 횡단보도에서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을 만난다면 시각장애인에게 정류장에 서는 버스 번호를 알려주거나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은 도움이 된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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