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알 작가’(햇병아리도 안 된 작가)가 인터넷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베스트셀러 ‘개미’ ‘신’을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앞섰다.
예스24는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 ‘제3인류’(열린책들) 출간에 앞서 7일부터 e연재 사이트에 총 20회 분량을 매일 한 회씩 무료 연재하고 있다. 베르베르가 워낙 두꺼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단숨에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14일부터 일주일 동안 ‘제3인류’의 조회수는 1만265건으로 2등에 머물렀다.
조회수 3만1179건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작품은 무명작가 정연주 씨(23·여)의 로맨스소설 ‘기화, 왕의 기생들’이었다. 다음 모바일서비스에서도 ‘제3인류’는 ‘기화…’의 벽을 넘지 못했다. 7월부터 3개월째 1위를 지켜 온 ‘기화…’는 지난달 59회로 이미 연재가 끝난 소설, 11회부터는 100원씩 내야 볼 수 있는 유료 소설이기도 했다.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정 씨는 “순위를 볼 때마다 눈을 의심한다. 나도 베르베르 소설의 팬인데…”라며 부끄러워했다. 정 씨는 연산군이 궁궐로 불러 모은 기생 조직 흥청에서 착안해 망나니 왕 이훈이 기생 가란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썼다. 주 독자층은 30대 여성. 고교 시절 디지털영상학을 전공해 영상 문법에 익숙한 것이 장점이었다.
“독자가 읽으면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듯 묘사에 중점을 뒀어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독자에게 긴장감을 줬죠. 그렇다고 쉽게 쓰진 않았어요. 매일 마감에 쫓기면서도 완성분의 세 배 이상을 버리고 고쳤습니다.”
로맨스를 쓰지만 현실은 고달팠다. 슈퍼마켓 집의 꿈 많은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가게가 망하면서 고교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2011년 수원여대 세무회계정보과를 졸업하고 세무사 사무실에서 일했다. 숫자로 가득한 영수증과 회계문서, 닦달하는 거래처 전화, 외부 영업까지 매일 파김치가 됐다.
그 와중에 지난해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한 장르소설 인터넷 공모전에 ‘인어의 목소리’를 3개월간 매일 연재하고 그날그날 독자투표에서 살아남은 끝에 판타지 분야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이제 ‘기화…’가 인기를 모으며 대기업 사원 못지않은 월수입을 올리는 전업 작가가 됐다. “부모님은 집에 틀어박혀 글만 쓰니까 걱정이 태산이셨는데, 꿈과 열정보다 수익을 보여 주니 안심하시더군요.(웃음) 앞으로 로맨스 소설을 열심히 써서 내가 쓴 책으로 책장을 채우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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