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 &joy]오대산 늦가을 만행(卍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4일 03시 00분


너와집암자는 날더러 물같이 바람처럼 살다 가라하네

오대산 너와지붕 서대수정암(염불암)에 고즈넉하게 내려앉은 늦가을. 돌아와 다시 거울 앞에 선 시골누님처럼 소박하고 곱게 늙은 절집이다. 뒤꼍에는 장작더미가 차곡차곡 정갈하게 쌓여있고, 암자 앞 손바닥만 한 남새밭엔 고추, 배추, 방울토마토가 토실토실하다. 방은 두 칸 쪽방이 전부. 한 칸은 부처님을 모신 법당, 다른 한 칸은 스님 한 분의 공부방을 겸한 생활거처이다. 스님은 공양간에서 밥 짓기에 한창이다. 썩은 통나무 속을 파낸 나무굴뚝에서 푸른 연기가 포르르! 하늘로 올라간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오대산=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오대산 너와지붕 서대수정암(염불암)에 고즈넉하게 내려앉은 늦가을. 돌아와 다시 거울 앞에 선 시골누님처럼 소박하고 곱게 늙은 절집이다. 뒤꼍에는 장작더미가 차곡차곡 정갈하게 쌓여있고, 암자 앞 손바닥만 한 남새밭엔 고추, 배추, 방울토마토가 토실토실하다. 방은 두 칸 쪽방이 전부. 한 칸은 부처님을 모신 법당, 다른 한 칸은 스님 한 분의 공부방을 겸한 생활거처이다. 스님은 공양간에서 밥 짓기에 한창이다. 썩은 통나무 속을 파낸 나무굴뚝에서 푸른 연기가 포르르! 하늘로 올라간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오대산=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늦가을 오대산이 발그레 물들었다. 꼭대기는 이미 흰 눈꽃이 피었다가 졌다(10월 16일 첫눈). 마침 첫눈 내린 날 비로봉(1563m)에 올랐다. 주목나무, 자작나무, 서어나무, 참나무가 저마다 눈꽃을 매달았다. 죽은 주목도 ‘하얀 미라’가 돼 천년을 살고 있었다. 저 멀리 설악산 대청봉이 하얗게 눈이불을 뒤집어썼다. 산 첩첩, 눈 첩첩, 구름 첩첩 그리고 소슬 안개 스르르, 서릿바람 싸알쌀, 맑은 소리 낭랑, ‘찰진’ 햇살 바스락….

오대산 발치엔 나뭇잎이 울긋불긋 곱게 화장을 하고 있다. 단풍은 하루 25km 속도로 계속 남하한다. 단풍은 사람이 딱 하루 걸을 거리만큼만 간다. 붉은 물결은 머지않아 태백산∼소백산∼월악산∼속리산의 백두대간을 따라 지리산으로 번질 것이다. 내장산도 숯불처럼 달아오를 것이다.

‘하늘이/하도나/고요하시니//난초는/궁금해/꽃 피는 거라’(서정주 ‘난초’ 전문)

그렇다. 하늘이 하도 맑고 푸르시니, 단풍꽃·눈꽃이 우우우 다발로 돋아나는 거라. 월정사들머리 전나무 숲에도 불이 붙었다. 단풍잎들이 노릇노릇 알맞게 익었다. 껑충 큰 전나무 푸른 잎 틈새로 키 작은 활엽수들이 울긋불긋 수줍게 숨어 있다. 깜찍하다. 언뜻언뜻 어른거린다. 아슴아슴 몽환적이다. 아침이슬에 젖은 단풍잎은 말갛고 고혹적이다.

쪽방 벽장 안쪽에 모셔진 서대수정암의 작고 소박한 아미타 부처님.
쪽방 벽장 안쪽에 모셔진 서대수정암의 작고 소박한 아미타 부처님.
서대수정암(西臺水精庵·염불암)은 고즈넉하다. 사위가 쥐죽은 듯하다. 서대는 오대산 오대암자(동대, 서대, 남대, 북대, 중대) 중 서쪽에 은근슬쩍 숨어 있는 ‘너와지붕 암자’다. 가는 길도 지도에 뚜렷이 나와 있지 않다. 오직 알음알음으로 불자들과 스님들의 발길이 이어질 뿐이다. 조선시대 한강의 시원으로 알려진 우통수(현재 시원은 검룡소)가 바로 옆이다.

‘무거운 물(重水·중수)’ 우통수의 물맛은 예나 지금이나 으뜸이다. 내장이 시원 짜르르!, 창자가 상큼 콸콸, 대장이 콰르르! 아연실색 까무러친다. 마른 논 물 대듯, 쿨컥쿨컥 한잔 더 마신다. 목울대가 자지러진다. 서대암자 수행자들이 우통수를 부처님 공양에 왜 올렸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수정암 너와지붕에 늦가을 햇살이 잠자리처럼 내려앉았다. 나비가 실눈 뜬 채 납작 단추처럼 붙어 있다. 햇발이 꼼지락거린다. 하얀 눈모자를 쓴 동대산(1434m) 머리가 눈앞에 수굿하다. 땡그랑∼때애앵 땡땡∼ 풍경소리가 아득하다. 암자 주위 남새밭엔 고추, 배추, 방울토마토가 토실하다. 겨울용 장작더미가 반듯반듯 정갈하게 쌓여 있다. 마당은 티끌 하나 없다.

스님은 어디 계신가. 이 깊은 산중에서 혼자 공부하려면 외롭지 않을까. 전깃불도 없는데 답답하지나 않을까. 쪽방 벽장에 모신 작은 부처님이 빙그레 웃는다. 앉은키가 50∼60cm나 될까.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이신가. 정겹다. 소박하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두 손이 모아진다.

뒤란 나무굴뚝에서 푸른 연기가 포르르! 포르릉! 솟는다. 썩은 통나무 속을 파낸 굴뚝이 산새들 둥지인가. 스님은 손바닥만 한 공양간에서 밥 짓기 바쁘다. 조심스레 몇 마디 말을 붙여 보지만 손사래를 친다. 저잣거리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비린내에 머리가 아픈지도 모른다. 하기야 술, 담배 냄새에 고기, 파, 화장품 냄새까지 오죽할까.

“10여 년 전 상원사에서 출가를 했습니다만 여태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어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다 거짓입니다. 불교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법명요? ‘나운(懶雲)’ 정도로 해두지요. 게으를 ‘懶(나)’에 구름 ‘雲(운)’….”

탄허 오가던 깨달음의 길, 활활 타오른다
월정사∼상원사 단풍숲길

불그족족 발그레 물든 월정사∼상원사계곡의 선재길 단풍터널. 고려시대 나옹선사와 근현대 선지식 방한암스님, 탄허스님 등이 오가던 깨달음의 길이다.
불그족족 발그레 물든 월정사∼상원사계곡의 선재길 단풍터널. 고려시대 나옹선사와 근현대 선지식 방한암스님, 탄허스님 등이 오가던 깨달음의 길이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계곡 따라 걷는 길은 ‘깨달음의 길’이다. 고려 말 나옹선사(1320∼1376), 방한암 스님(漢巖·1876∼1951), 탄허 스님(呑虛·1913∼1983)이 오가던 길이다. 한마디로 옛날부터 수많은 스님의 만행(卍行) 코스였다. 화전민들이 밭일하러 오갔던 오솔길이기도 했다.

요즘 그 길은 선재길로 다시 다듬어져 저잣거리 사람들도 오갈 수 있다. 굳이 신작로 흙길로 ‘삐까번쩍’ 승용차 타고 으스댈 것 없다. 승용차는 상원사나 월정사 주차장에 두고 갈 일이다.

‘선재’는 불교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善財童子)에서 비롯된 이름. 선재동자는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온 세상을 떠돌며 53명의 현인을 만나 깨달음을 얻었다. 선재길은 ‘지혜의 길’인 것이다.

선재길은 월정사(해발 660m)에서 상원사(해발 900m)로 거슬러 오를 수도 있고, 반대로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물을 따라 내려올 수도 있다. 9km 거리. 쉬엄쉬엄 노닐며 가도 3시간이면 너끈하다. 전나무 숲길(1.2km)에서는 월정사 부도 밭을 지나 곧바로 이어진다.

선재길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단풍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던’(한용운 시인) 그런 조붓한 분위기이다. 요즘 오대산은 발톱에 봉숭아물이 짙게 물든 상태. 정상 부근은 이미 낙엽이 지고 있다. 선재길은 오대천 골짜기를 따라 구불구불 가르마처럼 나 있다. 월정사 반야교를 건너 회사거리에서 시작된다. 회사거리는 일제강점기 일본 목재회사가 있었던 곳. 한때 화전민 360여 가구가 살던 너와집 동네였다.

단풍숲길 만행(卍行).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나뭇잎소낙비’가 쏟아진다. 다람쥐가 멀뚱멀뚱 입을 주억거린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무지 피할 생각을 않는다. 자갈길은 낙엽으로 푹신하다. 푸른 조릿대와 붉은 낙엽더미가 버무려져 누워 있다. 돌돌돌 돌을 감고 흐르는 물소리, 웅얼웅얼 끝없이 중얼거리는 바람소리, 삐삐! 종종! 뭔지 종종걸음으로 바쁜 새소리…. 계곡물 웅덩이엔 나뭇잎 배들이 빙빙 떠돈다.

섶 다리 위에 사람들이 오간다. 섶은 푸른 솔가지나 작은 나뭇가지를 말한다.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과 상판을 엮고, 그 위에 섶과 흙을 덮은 게 섶 다리다. 한여름 큰물 나면 한순간에 휩쓸려가는 어설픈 임시다리다. 최근에 다시 손을 봤다.

오대산 북대 상두암 부근엔 나옹선사가 좌선을 하던 나옹대가 남아 있다. 큰 바위에 작은 돌을 쌓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판자를 깔았다. 나옹선사의 선시는 우리 귀에 익숙하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부처님을 가운데에 두고 보살들이 설법듣는 형상
오대산은 연꽃나라

오대산은 5장의 연꽃잎으로 둘러싸여 있다. 비로봉(1563m)-동대산(1434m)-두로봉(1422m)-상왕봉(1491m)-호령봉(1561m)이 그렇다. 적멸보궁(1150m)이 그 꽃심이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사리를 모신 곳이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포효하는 풍수지형’이다. 부처님 사리는 바로 용의 정수리 부분에 안치됐다.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 양산 통도사, 태백 정암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한국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다.

오대산 동서남북 산허리와 그 한가운데에는 보살들이 살고 있는 다섯 ‘대(臺)’가 있다. ‘대’는 불상을 받치고 있는 좌대나 같다.

동대 관음암에는 일만 관세음보살, 서대 수정암에는 일만의 대세지보살, 남대 지장암에는 일만의 지장보살, 북대 상두암에는 미륵불이 머무른다. 중대 사자암은 일만의 문수보살이 있는 곳이며 비로자나불을 모신다.

한마디로 오대산은 부처님이 꽃술 부분(적멸보궁)에서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고 있고, 이를 중심으로 중대, 동대, 서대, 남대, 북대에 살고 있는 보살들이 부처님을 우러러보며 설법을 듣는 형상이다.

월정사는 연꽃나라(적멸보궁)로 들어가는 산문이다. 월정사 전나무 숲은 그 밑을 받치는 푸른 연잎이다. 월정사(해발 660m)는 동대산 발치에 자리 잡고 있다.

월정사 단기 출가학교

짧은 출가에 긴 깨달음. 월정사 단기출가학교가 그렇다. 실제 머리를 깎고(남자) 30일 동안 수행한다. 말로만 듣던 행자생활을 직접 몸으로 겪는다. 도량결계의식, 예식의궤, 작법습의, 수계식, 탁발공양, 교리 등 스님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습의를 배운다. 참선, 포행, 다도, 삼보일배도 행한다.

월정사단기출가학교는 2004년 9월 문을 연 이래 총 1900여 명이 졸업했으며, 이 중 160여 명이 출가를 했다. 제39기 지원은 12월 6일 마감. 고등학교 3학년 이상 성인이면 가능하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 033-339-6616

■Travel Info

▽교통

승용차로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진부 나들목에서 빠져 월정사로 가면 된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가려면 동서울터미널(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서 진부행 버스를 탄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진부에선 월정사까지 가는 버스가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7시 40분까지 하루 12회 있다. 이 중 상원사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6회. 월정사까지 25분 걸린다. 월정사∼상원사 거리는 9km.

▽먹을거리


산채정식, 산채비빔밥, 황태해장국이 대부분이다. 식당마다 맛과 가격이 비슷하다. △부일식당(033-335-7232) △오대산산채나라(033-334-9524) △경남식당(033-332-6587) △보배식당(033-332-6656) △민속식당(033-333-4497) △산수명산(033-333-3103) △오대산비로봉식당(033-332-6597) △오대산통일식당(033-333-8855) △유정식당(033-332-6818) △동대산식당(033-332-6910) △만우농박(033-332-6818) △산들산채식당(033-333-7198) ▽오대산가마솥식당(033-333-5355) △오대산산채일번가(033-333-4604) △우리식당(033-334-6655·토종닭 송어회) △일출식당(033-335-7079·버스터미널 부근 해물탕 전문)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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