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다른 시간]추락해 죽을 뻔한 자리, 30년 후 다시 서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4일 03시 00분


“제발 죽지만 않게 해 주세요! 장애가 생기는 것도 각오하렵니다.”

생명이 꺼져가는 세 살배기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저는 아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하느님과 조상님께 간절히 애원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3년 9월 22일 오후. 당시 거주하던 전남 목포의 모 아파트 5층 창문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진 아이는 피투성이의 처참한 모습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응급치료를 한 목포 병원에서는 즉시 광주의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직접 앰뷸런스에 동승해 산소마스크를 씌운 아이의 상태를 체크했습니다. 제게는 아들의 이름을 계속 부르게 했습니다. 이송 도중 호흡이 3번 멎고 심장이 2번 멈췄습니다. 이런 긴박한 순간에 설상가상으로 차가 빗길에 미끄러졌습니다. 차는 도로 반대편 차로로 넘어가 빙빙 돌았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사고 때 일부 잘린 혀가 잘 붙지 않았습니다. 재수술을 할 때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마취 없이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큰 낚싯바늘 같은 수술용 바늘로 혀를 꿰매는데도 눈물만 흘릴 뿐 큰 소리 한번 지르지 않아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그때 아이와 마음속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오냐, 너를 기필코 살려서 이 아픔을 이겨낸 그 의지만큼 강하게 키우겠노라’고.

퇴원 후 추락 현장을 찾아 생환 기념으로 사진 촬영을 해 주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콘크리트 바닥에는 핏자국을 물로 씻어 낸 얼룩이 남아 있었습니다. 당시 주위에서는 “아이가 아직 어려서 하늘이 받아주셨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다행히 아무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커주었습니다. 군 생활도 특수부대에서 하며 더욱 강한 남자로 성장했지요.

이젠 결혼하여 서울에서 살고 있는 아들이 이번 추석에 집에 내려 왔습니다. 저는 이 기회에 아들 내외를 데리고 30년 전의 그 가슴 아픈 현장을 찾아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당부했지요. “너는 하늘이 받아주어 살아난 것이니 하느님을 가까이 해야 하고,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시에 어린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신 의료진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김성윤 씨(전남 목포시)

추억의 사진을 보내주세요

※동아일보 레저·아웃도어 섹션 ‘Let's’가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코너를 연재합니다. 예전에 사진을 찍었던 추억의 장소에서 최근 다시 찍은 사진과 사연을 보내주시는 분께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저희가 준비한 선물은 프랑스 럭셔리 주방용품 브랜드 ‘르크루제’의 20cm 원형무쇠주물냄비(소비자가 34만8000원)입니다. 사진과 사연은 mikemoon@donga.com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Let's’ 신문 지면과 함께 찍은 사진을 추가로 보내주시는 분께는 가산점을 드립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