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사람들은 왜 공놀이에 미치는 걸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6일 03시 00분


아들의 질문에 고고학자 아버지, 4년간 지구촌 누비며 공놀이 기원 추적
◇더 볼/존 폭스 지음·김재성 옮김/368쪽·1만7000원/황소자리

1840년대 후반에 열린 라크로스 경기를 앞두고 북미 인디언 촉토족 여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오늘날 치어리더의 원조인 셈이다. 라크로스는 수백 명의 전사들이 대평원에서 나무 스틱으로 공을 쳐 기둥을 맞히거나 골문을 통과시켜 점수를 내는 필드하키를 닮은 북미 인디언의 전통 경기다. 최근 각팀 10명씩 겨루는 현대 스포츠로 부활했다. 황소자리 제공
1840년대 후반에 열린 라크로스 경기를 앞두고 북미 인디언 촉토족 여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오늘날 치어리더의 원조인 셈이다. 라크로스는 수백 명의 전사들이 대평원에서 나무 스틱으로 공을 쳐 기둥을 맞히거나 골문을 통과시켜 점수를 내는 필드하키를 닮은 북미 인디언의 전통 경기다. 최근 각팀 10명씩 겨루는 현대 스포츠로 부활했다. 황소자리 제공
“아빠. 우리는 왜 공놀이를 하는 걸까요?”

저자와 캐치볼을 즐기던 아들이 물었다. 하버드대에서 고대 마야문명 연구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우물쭈물 아무런 답도 못했다. 아들이 괜한 질문을 했나 보다. 아버지는 짐을 싸서 집을 떠났다. 4년 동안 공놀이의 발상지를 찾아다니며 직접 체험하고 연구하고 글을 썼다.

저자가 축구의 기원을 찾아간 곳은 마초들이 득실거리는 스코틀랜드 북부 오크니 제도의 커크월 섬. 이곳에선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 과거 지배세력이 달랐던 내륙지역과 항구지역으로 편을 나눠 톱밥 넣은 공인 바(ba) 하나를 두고 다툰다. 교회 종소리를 시작으로 남성 수백 명의 머리 위로 공이 던져진다. 거구의 사나이들은 자신의 지역으로 공을 가져가려고 치열한 몸싸움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경기장은 따로 없다. 자갈 포장도로, 좁은 골목길이 전쟁터로 변한다. 두 지역이 실제로 싸움을 벌이면 섬 전체의 안전과 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거친 놀이는 갈등과 불화를 해소하는 장치였다.

‘커크월 바’의 유래를 요약하면 이렇다. 수백 년 전 주민들은 앞니가 툭 튀어나온 폭군의 압제에 시달렸다. 폭정에 지친 주민들이 봉기하자 폭군은 다른 섬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늘 폭군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불안에 떨며 살았다. 그때 젊은 영웅이 나섰다. 비참한 나날이 끝났다는 증거로 폭군의 머리를 잘라오겠다며 떠났다. 목을 자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오는 길에 폭군의 앞니에 다리가 찔려 세균 감염으로 빈사상태에 빠졌다. 영웅이 마지막 힘을 짜내 폭군의 머리를 마을 한가운데 던지자 군중은 영웅을 잃은 안타까움과 폭군에 대한 증오에 휩싸여 머리를 발로 차며 거리를 누볐다.

저자는 커크월 바가 규칙이 거의 없고 거대한 군중이 팀을 이룬다는 점에서 가장 원시적인 축구라고 봤다. 상대를 잡아먹을 듯이 덤벼드는 커크월 사내들의 경쟁을 보며 ‘사냥에 나섰다’ ‘굶주려 있다’ ‘싸운다’ ‘영토를 빼앗는다’란 경쟁 스포츠 묘사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해묵은 기억의 흔적이라고 풀이했다.

축구 반대편에는 테니스가 있다. 테니스는 처음부터 계급 경계선을 그었다. 테니스는 중세 수도원 안에서 시작됐다. 당시 수도사들은 부활절 만찬 후 잠깐 즐기는 테니스는 품위를 손상하지 않는다고 입을 맞췄다. 테니스에 푹 빠진 수도사들은 놀이를 하며 욕설까지 내뱉었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 왕가도 값비싼 시설을 갖추고 품위를 지키며 작고 섬세한 공을 다루는 테니스에 탐닉했다. 테니스의 어원은 프랑스어로 ‘주의하라’는 경고의 외침이었던 ‘테네(tenez)’에서 나왔단다. 귀족 스포츠답게 서브를 넣으며 상대 선수에게 경고의 함성을 질렀던 데서 유래했다.

저자는 농구를 거의 모든 스포츠 가운데 사회적 목적으로 만든 유일한 종목으로 꼽는다. YMCA 체육 보조교사인 제임스 네이스미스는 1891년 청소년들이 겨울에도 실내에서 활발한 신체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농구를 고안했다.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여성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야구의 기원은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미국은 1839년 남북전쟁 영웅 애브너 더블데이가 뉴욕 주 쿠퍼스타운에서 최초의 경기방식을 고안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크리켓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잠재우려고 100주년이 되는 1939년 야구 ‘명예의 전당’을 설립하고 기념우표까지 발매한 것. 하지만 미국 역사학자들마저 ‘더블데이 기원설’을 인정하지 않는단다.

저자는 공을 동역학적으로 가장 생기 넘치는 무정물(無情物)로 정의했다. 공은 사회적 도구라서 사람을 뭉치게도 하고 뭉쳐 싸우게도 만들었다. 양발로 자유롭게 공을 차거나 굴리고 양손으로 튀기거나 던질 수 있는 인류는 태초부터 축복받은 셈.

긴 여정을 마친 저자는 다시 아들 앞에 섰다. 이번엔 아버지가 “공놀이를 왜 하느냐”고 묻자 아들은 “한마디로 재밌으니까”라고 답한다. 우문현답이다. 그래도 저자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저자는 아들과 스포츠를 즐길 때마다 자신이 연구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둘 사이가 한층 가까워졌다.

바야흐로 가을야구가 절정으로 치닫는 시점이다. 겨울스포츠인 농구와 배구도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다. 함께 경기장을 찾을 부자뿐만 아니라 연인과 친구들 간에도 “우리가 왜 이런 공놀이에 환장하는 것일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화제를 끌어가는 데 도움을 줄 책이다. 글이 딱딱해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군데군데 보이는 점은 아쉽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존 폭스#공놀이#역사#커크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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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13-10-27 06:54:24

    프로스포츠란 상업적 마케팅의 비극이다. 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수만명의 사람들이 운동이 거의 필요없는 수십명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소리치는 것이 프로스포츠다. 이것은 상업적 마케팅에 의해 대중들이 강제적으로 세뇌되는 불합리한 시스템에 있다.

  • 2013-10-26 09:04:27

    야구는 미국에서 젤 인기가 많은 경기다. 여타 구기 경기는 상대방에 공격을 하는 경기이나, 야구는 투수와 포수 사이에 공을 갖고 놀고 있는데 타자가 사이에 끼어 들어서 이를 방해하는 간섭의 경기이다. 세계속의 경찰국가를 자칭하는 미국과 성격이 맞아 떨어 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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