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반(反)세계화의 목소리가 유행이다. “지역 내 산업을 보호하지 않는 유럽연합(EU)은 지구촌 멍청이”라고 말하는 아르노 몽트부르 산업장관부터 이민에 반대하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 대표 마린 르펜, 급진적 재지역화를 주장하는 좌파당 대표 장뤼크 멜랑숑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쿠바에서 체 게바라의 혁명동지로 활약했던 레지 드브레도 최근 ‘국경에 대한 찬가’(갈리마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프랑스의 경제 전문가인 프랑수아 랑글레가 펴낸 ‘세계화의 종말’(파야르)은 자유무역의 신화는 끝났으며 이제는 보호주의를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2000년대 초반 정점에 도달한 현재의 세계화는 곧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70∼80년 주기로 개방과 보호주의의 사이클을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모든 사이클은 스스로의 부패와 타락으로 죽음을 맞는다. 1969년 히피 문화의 거대한 결집이던 ‘우드스톡’이 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끝난 것이다.”
세계화의 탄생과 죽음에는 경제적 요인보다는 늘 사회적 충동이 더 크게 작용해 왔다. 예를 들어 1945년 이후 영국에서는 규제와 보호주의, 복지국가가 전성기를 맞았다.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으며, 노조와 공공부문을 거대하게 만들었다. 결국 재정적자와 투자 감소로 인한 경제위기는 자유주의자인 ‘철의 여인’ 대처의 시대를 불러왔다.
반면 1980년대 말 동유럽의 몰락과 인터넷 혁명이 불러온 현재의 세계화는 지구촌을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했지만 부의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경제위기의 상시화를 낳았다. 저자는 이를 “부자들에게 주어진 과도한 자유가 중산층을 붕괴시키면서 벌어진 대혼란”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유럽의 경우 세계화로 인한 사회 불평등을 최저임금제와 사회복지시스템으로 감춰 왔지만, 더는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폭발하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세계화의 종말이 “꼭 나쁜 뉴스만은 아니다”고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로의 이행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세계화의 몰락 이후에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다.
첫 번째는 전쟁이다. 20세기 초반의 세계화 황금시대는 1913년에 끝났다. 그러나 국경을 인위적으로 없애려 했던 극단적인 폭력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반면 19세기 철도 건설 붐에 따른 세계화의 붕괴 때는 달랐다. 1873년 주식시장의 대폭락 이후 독일 미국 등은 국경을 복원하고 보호주의를 세웠다. 저자가 말하는 두 번째 시나리오다. 그는 “당시 현재처럼 장기간의 제로 성장을 겪어야 했지만, 몇 년 후 빚을 청산하고 다시 황금시대로 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현재의 위기는 몇 가지 온건한 보호주의 처방만으로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자유무역이든 보호주의든 하나의 도그마에 빠지기보다는 역사의 변동 사이클에 맞춰 균형을 찾아 가야 한다는 논리다. 그의 반세계화, 보호주의 주장을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위기 앞에 고민하는 프랑스 지식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