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전부터 과학사와 과학철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한국인 석학의 탄생을 알린 책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2004년 영어로 발표돼 영국과학사학회에서 수여하는 이반 슬레이드상(2005년)과 6년간 영어로 발표된 최고의 과학저술에 수여하는 러커토시상(2006년)을 수상했고, 2010년 40대 초반의 필자에게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의 영예까지 안겨줬다.
이런 화려한 수상 경력에 비해 정작 책의 소재가 ‘온도계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가’라는 일상적 물음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90쪽까지 읽는 데에도 많은 인내가 요구될 만큼 쉽지 않다.
전체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1∼4장은 각각 역사와 분석 부분으로 구성된다. 역사 분야는 물의 끓는점과 어는점처럼 온도 측정의 기준이 되는 고정점을 확정하는 데 얼마나 오랜 세월과 논쟁이 있었는지 보여준다. 화씨온도계의 파렌하이트, 섭씨온도계의 셀시우스, 절대온도 개념을 완성한 윌리엄 톰슨, 과학사에서도 잊힌 존재가 된 빅트로 르뇨까지 다양한 인물도 등장한다. 하지만 열역학을 다룬 다른 과학사 책들에 비해 박진감이 부족하다.
이 책의 진가는 분석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저자는 온도 측정의 역사라는 구체적 사례를 발판 삼아 과학적 인식의 표준이 마련되는 보편법칙을 모색한다. 감각적 실험을 중시하는 경험론과 이론적 정합성을 중시하는 합리론이 서로를 너그럽게 존중하는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연한 발견을 행운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원제 ‘Inventing Temp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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