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으로 왜곡된 인도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알리는 데 애써온 이옥순 연세대 연구교수(58·인도사)가 신간 ‘인도는 힘이 세다’(창비)를 냈다. 그는 1997년 첫 저서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가 인기를 얻은 이후 ‘인도 현대사’ ‘인도에 미치다’ 등 10여 권을 썼다.
신간은 올해 한국-인도 수교 40주년을 맞아 ‘변하지 않는 인도’와 ‘새롭게 변한 인도’의 양면을 두루 살핀 인문서다. 저자의 경험과 통찰을 토대로 인도의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설화를 버무렸다.
이 교수는 “인도는 알면 알수록 힘이 센 나라”라고 말했다. “인도는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어요. 무력이 아니라 문명의 힘, 문화의 힘, 종교의 힘이 강하다는 뜻이죠. 긴 역사에서 늘 지고 넘어져도 기어코 다시 일어나 살아남았다는 점에서도 힘이 세고요.”
그는 숭실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 우연히 인도에 관한 책을 접하고 ‘남들이 안 하는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에 인도로 발길을 돌렸다. 1984년 인도 델리대로 유학 가 7년간 머물며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인 인도사 박사 1호다. 이후 매년 두세 차례 인도를 방문해 보름에서 한 달씩 머무르며 자료를 찾고 답사를 다닌다.
인도에 가본 한국인 중에는 신비하고 이국적인 인도는 좋지만 가난하고 더럽고 영악한 인도인은 싫다는 사람이 많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 아마 저 빼고는 모두 인도인을 싫어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인도인이 느리더라도 옛것을 지키고 다양한 개성대로 사는 모습이 좋아요. 지금도 많은 여성이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고 다닐 정도로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강하고요.”
인도에서 카스트제도는 법적으로 폐지됐지만 그 문화는 여전하다. 외국인은 이론적으로 카스트 계급에도 못 들어가는 불가촉천민이다. 평소 인도인이 외국인을 얕보진 않지만 이 교수도 불가촉천민 취급을 당한 적이 있다. “유학 시절 카스트의 최상 계급인 브라만의 집을 방문했어요. 인도문화에 호기심이 많아 자연스럽게 부엌을 들여다봤더니 주인집 여자가 경악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집안에서 가장 성스러운 공간인 부엌에 불가촉천민이 들어오면 부정을 탄다고 여기더군요.”
책에 따르면 인도는 정신주의와 물질주의가 공존하는 나라,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종교 갈등이 흔치 않은 나라,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관용적인 나라다. 그는 “수천 개의 모습을 가진 인도문화는 구미호와 같다”며 “문화의 생존에도 많은 꼬리를 인정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인도 여성의 미(美)를 다룬 책을 내년 초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또 12월 문을 여는 사단법인 인도연구원의 원장을 맡았다. 인도에 관심이 많은 학자와 기업인 130여 명이 모여 국내 인도 연구의 중심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그가 인도 유학길에 오를 땐 외로웠지만 이젠 인도를 제대로 알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는 “인도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지만 이제 그 누구도 인도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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