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음 한 음이 생기 있고 영롱하게 반짝이면서도 선율은 물처럼 유연하게 흘러갔다. 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67) 리사이틀은 우리 시대의 거장과 마주하는 자리였다.
슈베르트, 쇼팽, 베토벤으로 꾸민 프로그램은 선명하면서도 기품 있는 색깔로 물들었다. 그는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는 명성답게 활기차고 가벼운 베토벤 소나타 10번과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21번 ‘발트슈타인’에서 때로는 이야기꾼처럼 속삭이고 때로는 장대한 풍경을 펼쳐 보이며 객석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슈베르트 즉흥곡 D899 2, 3, 4번은 어느 피아니스트도 떠오르지 않는 부흐빈더의 슈베르트였다. 서정성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균형감, 또랑또랑한 음색이 눈에 띄는 연주였다.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에서도 부흐빈더만의 향취가 흠뻑 배어났다. 부흐빈더는 피아노 앞에서 좀처럼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으면서 여유롭게 건반을 다스렸다.
관객의 뜨거운 반응에 그는 알프레드 그륀펠트가 편곡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베토벤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3악장을 앙코르로 들려줬다. 앙코르까지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고 엄격하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은 연주였다.
올해 손꼽을 만한 빼어난 리사이틀이었으나 관객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연주회였다. 이날 리사이틀에는 종이 프로그램 북 대신 QR코드를 이용한 모바일 프로그램 북만을 판매했다. 기획사 측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매체를 바꿔보자는 뜻에서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 북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객들이 연주 도중에 스마트폰을 켜고 프로그램을 살펴보느라 감상에 방해가 됐다는 불만도 나왔다. 또 콘서트홀 어디에도 프로그램 순서에 대한 공지가 없어 어리둥절해 하는 관객도 여럿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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