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다른 시간]어릴때 비 피하라고 입혀준 엄마 재킷, 25년만에 뉴욕서 다시 입어보니 ‘울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1일 03시 00분


1988년 어느 예쁜 가을날, 저희 세 식구는 단풍이 들기 시작한 산으로 등산을 갔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요. 엄마는 입고 계시던 주홍색 재킷을 벗어 저에게 입혀주셨습니다. 세 살이었던 제게 터무니없이 컸지만, 재킷은 엄마의 멋진 스타일링(?) 덕에 온몸을 꼭 감싸주는 멋진 레인코트로 변신했습니다. 허리에 두른 건 엄마의 머리띠였다고 해요. 주홍색은 아직도 저희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입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당시 엄마의 나이인 만 스물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응원에 힘입어 지금은 미국 뉴욕에서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있어요.

유학 오기 전에 제 어릴 적 앨범에서 맘에 드는 사진 몇 장을 휴대전화로 찍어 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등산 사진 속의 재킷을 엄마가 아직도 간직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다시 입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고, 똑같은 모습을 연출해 사진을 찍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재킷을 뉴욕으로 배송 받은 후 친구에게 부탁해 옛날 사진 속의 세 살짜리 저와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장소는 이스트빌리지의 작은 정원입니다.

비록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같은 옷이 25년이란 시간과 지구 반대편이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같은 사람에게 입혀졌다는 점이 저에겐 정말 뜻 깊게 느껴졌습니다.

최푸른 씨(미국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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