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2월로 산수(傘壽·80세)를 맞는 비평가이자 문인, 언론인이자 행정가, 교육자였던 이어령의 삶과 정신을 추적한 최초의 평전이다. ‘평생 자서전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어령의 지난 50여 년 인생 궤적을 그의 저작물과 제3자의 증언 등 실증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의 정신사라는 맥락에서 기술했다.
이어령이 잡지 문학사상의 주필로 활동하던 시절, 이 잡지의 문학기자로 일하면서 이어령을 알게 됐다는 작가는 다면적인 얼굴을 지닌 문화 창조자로서의 이어령의 역동적이고도 정력적인 삶을 독자 눈앞에 펼쳐 놓는다. 기성세대의 무능과 권위주의를 고발하며 문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청년 문인 이어령이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경의를 표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계 원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의 정신을 관통하고 있는 ‘창조’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이 책이 때로는 현미경처럼, 때로는 망원경처럼 조망하는 이어령의 참모습은 다채롭다. 일본어 세대로서 우리말과 글에 대해 느끼는 죄의식을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는 모습부터 일본의 외로운 하숙방에서 일본어로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발표해 일본 지식인을 경악시킨 순간, 남보다 한발 앞서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개념이나 자본주의 개혁(생명자본주의) 운동을 제창하는 모습까지 그의 치열한 정신세계를 심도 깊게 분석했다.
그렇다고 ‘이어령 문화영웅 만들기’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딸(이민아 목사)의 실명 위기에 안타까워하는 아버지, 그 딸을 통해 영성의 세계에 눈뜬 종교인,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불행한 소설가로서의 모습 등 인간적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도 적지 않다. 4년여에 걸친 취재와 인터뷰, 이어령 저작들에 대한 분석에 그의 청년기와 가족의 모습이 담긴 사진 자료 등이 더해져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평전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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