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코앞의 날씨 예보만 보고 산다. 비 소식에 우산을 꺼내고 한파 소식에 두꺼운 옷을 꺼냈다. 그러나 농부들은 길게 봤다. 태양이 움직이는 스물네 걸음을 따서 만든 절기(節氣)에 따라 움직였다. 보름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며 풍년 농사를 위해 땀 흘렸다. 저자는 현대인도 절기에 따라 살면 삶이 풍성해질 것이라 장담한다. 절기에 얽힌 유래와 절기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책에 담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7일은 입동(立冬)이다. 책은 겨울을 냉랭한 음기가 가득해 물과 땅이 얼고 먹거리는 자취를 감추는 계절로 풀이했다. 하지만 차가운 겨울에도 양기는 있다. 다음 해에도 살아남겠다는 뜨거운 양기가 우리 속에 자리 잡는다. 저자는 혼자서는 이 양기를 끌어낼 수 없고 관계 안에서만 양기가 힘을 발휘한다고 설파한다. 입동 때 음의 기운이 강한 어르신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치계미(雉鷄米) 풍속도 같은 이유에서 나왔다. 연말에 불우이웃을 돕는 것도 결국 남이 아닌 자신을 살리는 일이었다.
겨울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오매불망 봄부터 기다린다. 입춘(立春)에는 남 몰래 좋은 일을 하는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도 있지만 재미난 ‘아홉차리’도 있다. 입춘에는 무슨 일을 하든 9번을 한다. 밥도 9번 먹고 매를 맞아도 9번만 맞는다. 그런데 그냥 웃자고 하는 풍속이 아니다. “약간 모자란 듯 일을 남겨 놓고, 이후에도 계속 이어 갈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는 것이 핵심이다.”
소만(小滿) 때 찾아오는 보릿고개의 현대식 해석도 재밌다. 과거 보릿고개가 찾아오면 ‘일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더 정신 차리고 열심히 움직였다. 저자는 보릿고개를 통과의례의 일종으로 봤다. 모든 것이 풍족해진 지금은 소만의 의미를 어떻게 새겨야 할까. 저자는 스스로 통과의례를 만들라고 말한다. 그것은 ‘욕을 먹는 것’이다. 타인의 욕도 제대로 소화하면 피가 되고 살이 돼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단다. 절기가 주는 무한긍정의 힘이다. 절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다 보면 살아갈 힘도 나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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