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식탁/마이클 모스 지음·최가영 옮김/464쪽·2만 원/명진출판
마약 같은 중독성… 퓰리처상 수상 NYT기자, 美 식품업계의 탐욕과 비도덕성 고발
최근 국내에서는 ‘떠먹는 요구르트’가 꽤 화제였다. 건강에 좋다며 애들에게도 열심히 먹였던 이 제품들이 알고 보니 당이 가득했다는 얘기다. 콜라나 초코파이보다도 설탕이 많이 들어 있다는 자극적인 비교도 쏟아졌다.
그러데 알고 보면, 이 식품업체들이 그간 딱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떠먹는 요구르트 겉면에 버젓이 ‘당 함유량’이 표시돼 있다. 그저 몸에 좋은 유산균이 풍부하다고, 먹어 보면 맛있다는 측면만 강조해서 광고한 죄밖에 없다. 각설탕이 네댓 개쯤 들어간 것은 별 일 아니라서 대놓고 외치진 않았나 보다.
왠지 속은 기분이 드는가. 하지만 ‘배신의 식탁’을 쓴 저자였다면 아마 이렇게 코웃음 쳤을 것이다. “뭐 그 정도 가지고…. 그건 빙산의 일각도 안 돼요. 당신이 먹고 있는 음식들에 대한 모든 진실을 안다면 까무러칠 겁니다.”
대놓고 책날개에 ‘스타 기자’라고 써 놓은 것은 어이없지만, 실제로 저자인 마이클 모스는 이쪽 계통에서 경력이 화려하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을 거쳐 뉴욕타임스에 재직 중인 그는 201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현지에서도 올해 출간된 이 책은 기자의 직분을 잘 살려 미 식품업계를 샅샅이 뒤진 탐사보도의 전형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이 책은 크게 ‘설탕으로 배신하다’와 ‘지방으로 배신하다’ ‘소금으로 배신하다’ 3부로 돼 있다. 부제들이 너무 번역 투라 어색하긴 해도 의도하는 바는 자명하다. 설탕과 지방, 소금이 당신의 식탁을, 우리의 위장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저자에 따르면 식품업계는 이미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신나게 장사하느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 뿐.
책에 등장하는 1999년 4월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보자.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식품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기업의 수장 11명이 비밀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한 업체 대표가 그들이 이 세 가지 재료를 얼마나 듬뿍 쓰고 있는지,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지 장시간에 걸쳐 설명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이를 개선하자는 뜻에서 한 말일 텐데, 반응은 한마디로 정리됐다. “소비자는 변덕쟁이다.” 이러쿵저러쿵해 봐야 수시로 관심과 기호가 바뀌니, 업체는 그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반박이었다. 한마디로 기업은 선택권을 줬으니 책임은 소비자가 져야 한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먼저 설탕을 짚어 보자. 현대인들은 하루 평균 22스푼의 설탕을 먹고 있다. 딱히 먹은 기억도 없겠지만, 설탕은 그저 커피믹스나 청량음료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떠먹는 요구르트에서 보았듯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는 당이 들어간다. 특히 ‘정제 탄수화물’이 심각하다. 탄수화물로 표기되지만 체내에 들어가면 바로 설탕으로 바뀐다. 하지만 시리얼이나 콜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업체들은 수십 년간 누가 더 설탕을 많이 넣을까 경쟁해 왔다. 왜? 더 맛있으니까, 더 많이 팔리니까. 소금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진짜 무서운 건 지방이다. 설탕이나 소금은 시민단체나 학계로부터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공격이라도 받는다. 지방은 ‘소리 없는 암살자’다. 나쁜 건 알겠는데 어떻게 먹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비계만 골라낸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자 칩이 바삭한 이유, 식빵이 촉촉하게 살아 있고 통조림 요리에 윤기가 도는 까닭…. 다 지방이 들어가 있어서다. 더 놀라운 건 지방은 설탕이나 소금 맛을 순화시켜 더 많은 섭취를 유도하고,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한 가지 더. 모두가 완벽한 음식이라 여기는 치즈(여기서는 가공 치즈를 일컫는다)도 무조건 믿지 말길. 다른 의미로 완벽한 지방 덩어리니까.
이 책은 무서운 책이다. 단순히 설탕 지방 소금 3형제의 위험성만 지적하는 게 아니라, 관련 업계가 이를 사용하는 데 도덕적으로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일러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종종 식품업체를 담배업체와 비교하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파급력 면에서 따지자면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게 없다. 특히 아이들을 맛으로 길들이는 이들의 치밀한 전략은 경이로울 정도다.
다만 너무 역사를 두루 살피는 통시성까지 갖춘 탓에 살짝 산만한 느낌이 없지 않다. 독자를 박력 있게 끌고 가지 못한다고나 할까. 이 정도인가 하며 놀라다가도, 뻔한 잔소리를 듣는 듯 푹 퍼지는 기분이 든다. 책을 읽다가 오히려 콜라가 당긴 적도 있었다. 어쩌면 그들 말이 맞다. 소비자는 변덕쟁이다. 배신을 당했는데 어떻게 보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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