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으로 그린 경주 남산의 풍경이 웅장하면서 치밀하다. 가로세로 3m에 가까운 큰 화폭에 먹으로 시원하게 표현한 산봉우리들이 꽃잎처럼 겹겹이 배치돼 있다. 산들은 섬세한 붓질로 묘사한 석불과 탑 같은 보물을 저마다 몸속에 품고 있다.
한국화가 소산 박대성 씨(68)의 그림에선 수묵화의 전통 기법과 대담하고 활달한 화면구성이 적절한 긴장과 균형을 유지한다. 겸재, 소정, 청전을 잇는 실경산수의 거장으로,평생 서화의 근본을 충실히 갈고닦은 사람으로 누릴 수 있는 파격과 자유를 십분 발휘한 덕이다.
그가 2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원융(圓融)’을 주제로 7년 만의 개인전을 연다. 작업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경주에 살면서 길어 올린 신작 50여 점에서 먹의 향기와 붓의 기운이 흘러넘친다. 그가 고유문화의 원천으로 탐구하는 신라정신과 불교적 소재, 실경을 재해석한 수묵화들이다.
외적으론 중국에서 만든 생지(生紙)에 부분적으로 색채를 사용한 것, 내면으로는 기존 작업에 서예정신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 점이 돋보이는 변화다. 3000원. 02-720-1020
○ 서예정신을 뿌리로 삼다
경북 청도 태생의 소산은 6·25전쟁 때 부모와 왼팔을 잃었다. 전시장을 찾은 화가는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놀려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그게 서예와 그림이었다”고 들려준다. 곤고했던 유년시절이 견고한 미학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된 셈이다.
정규교육 대신 독학으로 글씨와 화업에 평생 정진한 것도 이젠 콤플렉스 아닌 장점으로 받아들인다. 스승의 눈치 보지 않고 독창적 조형작업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다완과 훈민정음, 산수와 경전이 어울린 신작처럼 문자와 그림을 혼융한 작업에 빠져 있다. 그는 “문화는 바로 문자다. 문자가 없으면 원시다. 서예는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예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믿는 그는 필법과 그림을 하나로 아우른 추사 정신을 본받는 것이 목표다. “세한도는 그림만 익힌 화가의 손으로는 도저히 못 그립니다. 한 필획이 백 필획을 능가하는 붓의 깊이가 담겨있어서죠. 평생 글씨를 써왔지만 요즘에야 나름대로 필법을 획득해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우리 것을 근본으로 삼다
내년 가을 경주에 박대성미술관(설계 승효상)이 문을 연다. 그는 이 소식을 전하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색채를 선호하는 미술시장에서 올곧게 먹의 정신을 추구한 여정이 마침내 보답을 받게 된 것이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선 전통 수묵화와 서예작품이 경매에서 피카소 작품 못지않은 강세입니다. 우리의 전통은 중국, 일본과도 완전히 다르죠. 굉장히 맑은 것입니다. 일제 35년을 거치면서 서구식 버터냄새가 우리 그림에 스며들었습니다. 자유롭게 의식을 열어놓는 것은 좋으나 전통 수묵의 매력은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제목도 모든 존재나 현상이 자기 본성을 잃지 않으면서 원만하게 조화를 이루는 원효의 ‘원융무애’ 사상에서 빌려왔다. 근본을 지키되 거기에 얽매이진 않겠다는 옹골찬 고집이 서예와 그림, 실경과 관념, 수묵과 채색, 과감함과 섬세함 등 상반된 속성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우리 시대의 설익은 퓨전에 따끔한 일침을 주는 전시를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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