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동리-목월문학상 수상… 소설가 강석경 - 시인 유안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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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강석경 “예술도 인생도 결국은 내려놓음을 통해 완성”
시인 유안진 “숙맥같은 바보스러움… 참된 영성은 그 속에”

《소설가 강석경(63)이 제16회 동리문학상, 시인 유안진(72)이 제6회 목월문학상 수상자로 정해졌다. 수상작은 강석경의 장편 ‘신성한 봄’(민음사), 유안진의 시집 ‘걸어서 에덴까지’(문예중앙). 동리·목월 문학상은 경북 경주 출신인 소설가 김동리(1913∼1995)와 시인 박목월(1916∼1978)을 기리기 위해 경주시와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제정한 상이다. 상금은 각 7000만 원이며, 시상식은 다음 달 6일 경주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다. 》

제16회 동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강석경은 8년 만의 신작 ‘신성한 봄’을 통해 예술도 인생도 결국 내려놓음과 비움을 통해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문학사상사 제공
제16회 동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강석경은 8년 만의 신작 ‘신성한 봄’을 통해 예술도 인생도 결국 내려놓음과 비움을 통해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문학사상사 제공
소설가 강석경은 수상 소감을 부탁한다는 말에 “상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아서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는 말부터 꺼냈다. 동리 선생과도 변변한 인연이 없어 더 그랬다. “문인 여럿이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딱 한 번 뵌 게 전부예요. ‘작가는 시간을 잘 아껴 쓸 줄 알아야 하네’ 하고 당부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수상작 ‘신성한 봄’은 독자들에게 ‘숲 속의 방’으로 유명한 작가가 ‘미불’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원체 과작(寡作)의 작가지만 이번엔 공백이 더 길었다. “작품이 제 안에서 충분히 삭아서 필연적으로 나오길 기다렸다고 할까요? 그래서 별로 조급하지는 않았어요.”

‘신성한 봄’은 간경화에 걸려 간 이식 수술을 받은 노년의 연극배우 윤미호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아들을 만나려고 떠난,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여행을 따라가는 기행체 소설. 동리문학상 심사위원회(이어령 김주영 임헌영 문순태 김지연)는 “8년여에 걸쳐 집필한 이 작품은 범세계적인 관점으로 작가 특유의 문학관이 농밀하게 익어 있는 새로운 기행체 소설”이라고 평했다.

이화여대 조소과를 나온 작가는 1974년 문학사상 제1회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소설을 통해 예술가의 삶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 왔다. 전작 ‘미불’도 에로티시즘을 추구하는 칠순 노화가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이번 수상작에서도 주인공 미호는 터키와 그리스를 거쳐 로마로 향하는 20여 일의 여정 동안 스승과 친구, 옛 애인에게 예술과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편지글로 고백한다. “편지를 통한 자기 고백이 불가에서 말하는 고통의 바다(苦海) 같은 삶 속에서 스스로를 비우는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예술도 인생도 결국은 일종의 내려놓음, 비움을 통해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담으려 했지요.”

10여 년 전 25년간 서울 생활을 접고 김동리의 고향인 경주로 이사한 작가는 요즘도 가끔 김동리의 ‘무녀도’를 꺼내 읽는다고 했다. “삶의 근본을 탐색하려 했던 선생의 치열함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새로워요. 작가로서 마음가짐을 다잡게 합니다.”

제6회 목월문학상 수상자인 유안진 시인은 “열여섯 권의 시집을 낼 수 있었던 것도 ‘문학 전공자가 아니라고 시작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목월 선생의 당부 덕분”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제6회 목월문학상 수상자인 유안진 시인은 “열여섯 권의 시집을 낼 수 있었던 것도 ‘문학 전공자가 아니라고 시작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목월 선생의 당부 덕분”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DB
“한복에 흰 고무신 차림의 목월 선생께서 ‘유 군! 자네 전공이 교육심리학이라 했지? 문학 전공자도 살다가 힘들면 시가 베리는데, 자네를 추천했다가 시 안 쓰면 나는 뭐가 되노?’ 하시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목월문학상 수상자 유안진 시인은 수상 소식을 듣고 “1965년 저를 현대문학에 추천하면서 목월이 했던 염려의 말씀이 다시 들리는 듯하다”고 했다. 문학 전공자가 아닌 데다 대학교수로 논문을 쓰고 후학을 기르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끝내 시를 놓지 않았던 것도 목월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와 당시 한양대 교수이던 선생께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제 손을 꼭 붙들고 총장님부터 대학본부 교수님들께 일일이 인사시키며 ‘내 제자가 박사가 돼 돌아왔다’고 자랑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수상시집 ‘걸어서 에덴까지’는 시인의 열여섯 번째 시집. 목월문학상 심사위원회(권영민 이하석 신달자 구중서 정호승)는 “모험성과 혁신성이 뛰어나고 김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전통적인 서정미를 놓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샀다”고 평했다.

시인이 수상시집의 대표시로 꼽은 ‘대낮이 어찌 한밤의 깊이를 헤아리겠느냐’를 비롯해 ‘정전사고’ ‘그림자 옷 벗기기’ 등 수록 작품 곳곳에서 검은색, 암흑, 어둠의 이미지에 대한 강한 긍정이 느껴진다. “검은색은 그 어떤 색도 품을 수 있는 색이잖아요. 흔히들 용서나 포용 하면 흰색을 떠올리지만 우리 일상의 실수와 과오, 수치까지 전부를 포용할 수 있는 절대자의 색이 있다면 그건 검은색 아닐까요?”

2006년 서울대에서 정년을 1년 앞두고 퇴직한 시인은 “마음이 점점 문학으로 기우는 것을 느꼈는데 학교에 매여 있어서 솔직히 고통스럽기도 했다”며 창작에 몰두할 시간이 늘어 좋다고 했다

요즘 시인의 화두는 바보스러움이다. “물정 모르는 사람을 ‘숙맥(菽麥)같다’고들 하잖아요. 녹두(숙)와 보리(맥)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란 뜻인데, 참된 영성은 그런 바보스러움 속에 깃들어 있지 않나 생각하곤 해요. 내년쯤 나올 다음 시집은 어리석게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될 겁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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