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들 패션취향 유럽-미국 대도시만큼 세련돼보여
‘브룩스 브라더스’ 클라우디오 델 베키오 회장
‘하나의 국가, 하나의 운명(one country, one destiny).’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이 1865년 암살될 당시 입고 있던 슈트 안쪽에 새겨진 문구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만난 ‘브룩스 브라더스’의 클라우디오 델 베키오 회장(55)은 이 일화를 소개하며 “평소 링컨 대통령은 우리 브랜드의 슈트를 즐겨 입었다. 당시 입고 있었던 옷은 암살당하기 3주 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195년 전통의 미국 패션 브랜드 브룩스 브라더스는 미국에선 ‘대통령의 슈트’로 유명하다. 델 베키오 회장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브랜드다 보니 미국의 역대 대통령 44명 가운데 39명이 입었다”고 자랑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취임식 때 브룩스 브라더스의 점잖은 슈트를 선택했다.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근처에 있는 브룩스 브라더스 매장은 정치인들이 주 고객이다. 델 베키오 회장은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으레 그곳에서 의정 활동 때 입을 첫 슈트를 맞춰 간다”고 전했다.
브룩스 브라더스는 올봄 개봉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 속 남성 연기자들의 슈트를 협찬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 그는 “원래는 영화의 배경이 된 1920년대 스타일의 의상을 제작해 조연급 연기자들에게만 입히려 했다”며 “결국 주연을 포함한 전 남성 연기자들에게 우리 옷을 입히게 됐다”고 말했다. 배우들을 위해 브룩스 브라더스가 제작한 옷은 총 600벌에 이른다. 당시 영화 속 의상을 바탕으로 제작한 ‘캡슐컬렉션’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영화 속에서 입었던 ‘핑크 슈트’는 국내에도 수입돼 판매됐다.
소비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는 국내 패션 시장에선 남성용 슈트의 타격이 가장 크다. 이런 시장 상황을 전하자 델 베키오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국에선 실업률이 높아지는 불황에 오히려 남성 슈트가 잘 팔립니다. 직장인과 구직자 모두 더 단정한 복장으로 개인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려는 거죠.”
그는 이어 자신의 브랜드에 대해 “창립 이래 표방해 온 브랜드 가치가 ‘공정한 가격에 판매하자(sell at fair price)’이다 보니 불황에도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는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미국의 ‘국민 슈트’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델 베키오 회장은 원래 이탈리아인이다. 그는 브룩스 브라더스를 2001년 인수했다. 이후 브랜드의 핵심인 슈트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제조 공장을 사들이는 등 투자를 이어갔다.
델 베키오 회장은 세계 안경 시장 1위 업체인 이탈리아 룩소티카그룹 창업주의 장남이기도 하다. 이른바 ‘패션 재벌가’ 출신이지만 거만한 부호라기보다는 신중한 비즈니스맨의 느낌이었다.
“제가 자청해서 열네 살 때부터 아버지의 안경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직원들을 존중하는 법, 미학적 관점 등을 아버지로부터 많이 배웠죠.”
약 10년 전 처음 방한했던 그는 당시와 지금 서울 쇼핑거리 풍경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한국 남성들’을 꼽았다.
“10년 전엔 남성복 매장을 가면 남자 옷을 주로 여성들이 대신 고르고 있었는데, 이젠 남성들이 직접 옷을 고르더라고요. 취향도 유럽이나 미국 대도시 이상으로 세련돼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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