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식당 착한 이야기]경북 청도 청국장 명가 ‘소나무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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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한 볏짚처럼 맑은 청국장… 부드럽고 깊은 ‘토종의 맛’

청도로 낙향해 시작한 청국장 명가 ‘소나무집’. 콩의 명산지인 데다 아궁이까지 잘 갖춰져 있는 집이 이 말에 꼭 맞았다. 국산 콩만을 고집하며 맑게 만들어 내는 청국장. 그 깊고 부드러운 맛은 한 번 맛본 이들을 사로
잡는다. 죽 늘어선 장독대에서 햇살을 받으며 콩을 다듬는 일은 소나무집을 운영하는 문인만 씨(왼쪽)와 아내 김주금 씨에게는 행복 그 자체다. 청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청도로 낙향해 시작한 청국장 명가 ‘소나무집’. 콩의 명산지인 데다 아궁이까지 잘 갖춰져 있는 집이 이 말에 꼭 맞았다. 국산 콩만을 고집하며 맑게 만들어 내는 청국장. 그 깊고 부드러운 맛은 한 번 맛본 이들을 사로 잡는다. 죽 늘어선 장독대에서 햇살을 받으며 콩을 다듬는 일은 소나무집을 운영하는 문인만 씨(왼쪽)와 아내 김주금 씨에게는 행복 그 자체다. 청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백숙 팔면 하루 세 끼는 먹고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아내(김주금·64)의 말에 남편 문인만 씨(65)는 마음이 무거웠다. 1남 2녀를 둔 가장으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문 씨는 부산에서 합판공장을 운영하던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 사업이 기울었다. 거래하던 대기업은 하루아침에 등을 돌렸다. 막내딸은 고교에 재학 중이었다. 한창 돈이 들어갈 때였다. 결국 그는 사업을 접고 고향인 경북 비슬산 동쪽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올 1월 11일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X파일’에서 33번째 착한식당(청국장)으로 선정된 ‘소나무집’은 그렇게 태어났다.

3일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에 있는 소나무집을 찾았다. 대구와 청도를 잇는 좁은 도로에서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비탈길을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식당 입구에는 오전부터 차량 20여 대가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식당 앞에 수령 200여 년쯤 돼 보이는 소나무 세 그루가 눈에 띄었다.

문 씨가 식당 문을 연 건 2002년. 애당초에는 부모님이 미리 사 둔 땅에 집을 지은 뒤 이를 팔아 사업을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업자금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헐값에 부모님이 준 땅을 팔 순 없었다.

그때 아내는 ‘백숙집’을 제안했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아내의 음식 솜씨는 괜찮았다. 아내는 난생 처음으로 식당에 취업해 주방에서 4, 5개월간 일을 배웠다. “처음에는 하루에 2, 3팀, 어떤 때에는 손님 한 명 구경하기 힘들 정도였죠.”

냉장고에 넣어둔 생닭은 시간이 지나 수차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메뉴에 삼겹살을 추가했지만 손님은 늘지 않았다. 도심에 있는 자녀에게 부쳐야 할 돈이 밀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내는 청국장이 떠올랐다. 경북 청도군 각남면과 풍각면 일대는 콩 산지였다. 대량 생산되는 국산 콩으로 청국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청국장은 냉동보관하면 오래 저장할 수 있었다. 집 구조도 청국장과 궁합이 맞았다. 사랑채에 전통 아궁이가 있고, 가마솥도 있었다. 국산 콩만으로 전통적인 방식에 의해 청국장을 띄우기 시작했다. 직접 콩을 삶아 이불을 덮어 발효를 시켰다. 사랑채에 삶은 콩을 고석(볏짚)과 함께 소쿠리에 담아 면 보자기로 덮고 다시 이불을 덮어 40도 온도에 60% 습도를 유지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근처 비슬산과 용천사 관광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번쯤 들러보는 곳이 됐죠.”

단골이 생기면서 큰돈을 벌진 못했지만 생계는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국산 콩이 중국산 등에 비해 가격이 배 이상 비쌌지만 맛을 유지하기 위해 국산을 고집했다.

2, 3일에 한 번씩 청국장을 띄울 때 사랑채 근처는 구수한 냄새로 가득했다. 막내딸은 처음에는 “옷에 청국장 냄새가 배어 세탁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철이 들면서는 그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식당 문을 연 지 12년째. 문 씨 부부는 60대에 접어들었고 막내딸까지 시집을 보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혼자 주방을 지키는 아내도 힘에 부칠 날이 올 텐데….” 문 씨는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던 중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 말 낯선 손님 서너 명이 식당에 찾아와 청국장을 주문한 뒤 음식을 세세히 살피고 떠났다. 그러곤 며칠 뒤 ‘채널A’라며 불쑥 제작진이 찾아왔다. 문 씨는 10여 년간 한 가지 메뉴만 고집하며 정성껏 손님을 맞이하다 보니 방송에서도 찾아와주는구나 정도로 받아들였다. 올 1월 11일 ‘이영돈 PD의 먹거리X파일’에 ‘준착한식당’으로 방송됐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날 오후 11시 40분경부터 문의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장소가 어디냐, 어떻게 가느냐, 미리 예약할 수 있느냐”는 전화가 오전 2시까지 걸려왔다.

이튿날인 토요일 오전 10시경 식당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식당으로 진입하는 좁은 길을 차들이 가득 메웠다. 일할 사람은 문 씨와 아내뿐인데 100여 명이 청국장을 맛보겠노라고 전국에서 찾아온 것이다. 이날 문 씨는 어떻게 손님을 받았는지, 몇 명이 왔다 갔는지, 계산은 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릇이 모자라 1인용 뚝배기가 모두 소진됐다. 식당 밖의 차량이 뒤엉켰지만 손 쓸 방법조차 없었다.

같은 시간 청도군청 당직실도 전날 방영된 청국장집의 전화번호와 상호를 알려 달라는 전화가 쇄도해 업무까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 후에도 전화가 쇄도하자 청도군청 위생과는 인터넷에 ‘청도군 청국장집은 소나무집입니다’라며 찾아가는 방법과 전화번호를 올렸다. 이중근 청도군수까지 소나무집을 방문했다.

소나무집의 청국장 맛은 어떨까. 기자가 방문한 날은 전날 오전 콩을 삶아 사랑채에서 이틀째 띄우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암모니아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두의 단백질이 발효되면서 생긴 아미노산이 분해돼 풍기는 냄새였다. 나무 국자로 청국장을 한 움큼 떠올리자 실같이 끈적끈적한 점성물질이 확연하게 나타났다. 청국장은 수백억 마리의 발효균,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항암물질과 항산화물질, 면역증강물질 등이 있는 보신백화점 같은 식품이다.

잠시 후 식사가 나왔다. 대부분 도심 식당의 청국장은 고춧가루나 조개 등을 사용하지만 이 집 청국장은 두부와 무 호박 파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색깔은 연한 볏짚색깔처럼 맑은 편이었다. 반찬도 단출했다. 콩볶음, 꽈리고추 밀가루지짐, 무생채, 김치, 두부를 만들고 난 비지가 전부였다.

청국장 맛을 보니 특유의 냄새는 있었지만 톡 쏘는 맛은 아니었다. 부드러웠다. 일반 식당에서 느꼈던 청국장 맛을 떠올린 뒤 다시 맛을 보자 맨송맨송하다는 느낌이 더욱 다가왔다.

“100% 우리 콩만으로 집에서 띄우고 다시마와 멸치 새우 표고버섯으로 육수를 만들지만 잡다한 재료는 넣지 않았습니다.” 깔끔한 청국장 맛의 비결이었다. 두부도 탱글탱글하면서 고소했다. 반찬 식재료인 배추 무 고추 고춧가루 등은 대부분 집 주변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다. 봄이 되면 인근에서 유명한 정대 미나리도 사용한다.

원래 소나무집은 ‘이영돈 PD의 먹거리X파일’ 프로그램에서 완전한 ‘착한식당’이 아니었다. 음식을 만드는 정성과 노력은 착한식당 못지않지만 소량의 인공조미료를 사용하거나 위생 등 아쉬운 점이 나타나면 ‘준착한식당’으로 선정한 뒤 개선되면 착한식당으로 승격시킨다. 소나무식당도 청국장 발효과정에서 넣는 볏짚을 플라스틱 홀더로 묶고, 가마솥에서 삶은 콩을 퍼낼 때 환경호르몬 배출이 우려되는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준착한식당’으로 선정됐었다. 뒤늦게 한식명인, 호텔조리과 교수, 식자재유통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비밀검증단이 이를 개선한 사실을 발견해 ‘착한식당’으로 승격했다.

방송이 나간 뒤 어려운 점도 많았다. 친절하지 않다거나 반찬이 부실하다는 등의 지적이 인터넷에 올랐다. 이를 본 경기 남양주에 사는 큰딸 희진 씨(38)는 전화를 걸어 “왜 욕 얻어먹고 사느냐”며 난리였다. 그럴 때마다 문 씨와 아내는 “먹는장사는 마음까지 후해야 한다”며 말렸다.

문 씨는 소나무집 손님이 늘면서 주방과 홀에 마을 주민을 채용했다. 인근 울산의 한 대기업에서는 점심시간에 청국장 600인분을 주문하기도 했다.

국산 콩만을 고집하자 주변의 콩 값이 덩달아 오르기도 했다. “한 말에 6만5000원 선이 정상가격인데 우리 집은 국산 콩만을 사용한다고 소문이 나 7만5000원대까지 올랐어요. ‘이영돈 PD의 부작용’이랄까요.”(웃음)

울산에서 가족과 함께 소나무집을 찾은 박헌영 씨(43·여)는 “청국장 맛이 깊고 부드러웠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씨는 “많은 손님을 맞을 때는 힘이 들지만 청국장 한 그릇을 후딱 비우고 떠나가는 이들을 보면 건강한 먹을거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방송이 나간 뒤 손님이 늘어나자 상상하지도 못할 거액을 제시하며 식당을 팔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이젠 손님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청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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