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제, 마지막 황태자, 마지막 공주…. 왕가의 인물 앞에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호기심이 급상승한다. 몰락으로 치닫는 왕조의 비운이 그를 감싸고 있는 데다 시중의 장삼이사(張三李四)가 범접하기 힘든 왕실의 내밀한 비밀을 품고 있을 것 같아서다.
이 책은 청나라 왕조 말기 쯔진청(紫禁城·자금성)의 환관(정확히는 환관의 우두머리인 태감)으로 일하며 서태후(동치제의 모후)와 융유태후(광서제의 황후)를 25년간 지근거리에서 모신 신슈밍(信修明)의 체험담과 다른 태감들의 증언을 엮은 것이다. 1950년대 문서화한 내용을 2010년 중국에서 책으로 엮어서 낸 탓에 신슈밍의 생몰연도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마지막 황제 푸이(선통제)의 퇴위와 공화정 수립의 순간을 지켜본 저자이니 가히 ‘마지막 환관’이라 할 만하다. 10년이나 과거공부를 하다 생계를 위해 스스로 거세한 엘리트 환관이 들려주는 황궁의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태감의 눈에 비친 황제는 위엄과 권위가 넘치는 지존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건강을 생각해 심심한 식단과 소식(小食)을 강조하는 태감들의 눈을 피해 음식을 뺏어먹는 광서제, 궁궐 밖 기방을 들락거리다 화류병(성병)에 걸리고 이를 이실직고 못한 어의의 잘못된 처방 탓에 죽음을 맞는 동치제의 얘기가 대표적이다. 왕위 계승 서열을 끌어올리려고 예정일보다 무리하게 일찍 출산한 함풍제가 병을 달고 살다 끝내 서른 살에 단명하는 이야기는 황제의 어머니가 되기 위한 황후와 비빈(妃嬪)들의 비정한 권력암투의 이면을 보여준다.
믿기 힘든 비화도 많다. 황실의 실력자 서태후가 건강을 유지하려고 수시로 여인들의 젖을 먹었다는 일화나 서태후에게 밉보인 늙은 태감에게 자신의 대소변을 먹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얘기는 몸서리쳐지는 절대 권력의 실체를 환기시킨다.
궁궐의 투명인간이었던 태감들의 직무와 일상을 상세히 기록해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아 보인다. 태감들이 황족과 외국 사신 앞에서 공연할 연극을 준비하고 배우 역할도 했다거나 평생 황실에 봉사하고도 퇴직 후 궁궐 밖으로 나오면 풍찬노숙하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태감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독자들의 시선을 붙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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